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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프로포폴 자살이 아닌 '살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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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프로포폴 자살이 아닌 '살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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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문자 메시지로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신고자가 묵고 있는 모텔에 도착해보니 프로포폴을 포함한 다수의 약물 병들이 널브러진 방안에서 남자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죽어 있었다. 부검에서 남자의 오른팔 앞뒤로 주사 자국이 관찰되었다. 팔 앞쪽의 피부와 혈액에서 디클로페낙, 프로포폴 그리고 리도카인이 검출되었다. 이 중 디클로페낙 약물의 혈중 농도는 원래 치료농도의 약 100배, 독성이 나타날 수 있는 농도의 6배가 넘는 수치가 검출됐다. 치사량이었다. 디클로페낙은 원래 관절염 등에 사용되는 진통제다. 실수로 투여되어 사망에 이르기는 매우 어려운 약물이었다. 누군가 아주 많은 양의 약물을 오른팔 앞쪽에 주사로 투여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스스로 죽겠다고 소동을 벌이면서 정신병원으로 옮겨 치료 중이었다. 사건 발생 3주 후에야 여자에 대한 첫 조사가 이뤄졌다. 남자는 노래방에서 우연히 여자를 만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간호조무사인 여자도 동거남이 있었으나 남자와 연애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여자는 동반 자살을 결심하고 남자의 오른팔에 연결된 수액 병에 디클로페낙과 프로포폴을 투여했고, 자신의 팔에 연결된 수액에 디클로페낙, 프로포폴 그리고 리도카인을 투여했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똑같이 약물을 투여했으나 저절로 주사기가 빠진 것 같다면서 스스로 뽑은 것이 아니라면서 아마도 프로포폴에 의한 경련 때문일 것이라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프로포폴은 반응시간이 매우 짧아 전신마취 유도제로도 많이 이용된다. 회복이 빠르고 부작용이 적어서 간단히 외래에서 수술하거나 수면 내시경 등 간단한 시술의 진정에도 많이 사용된다. 프로포폴의 부작용으로 심장의 리듬이 불규칙해질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혈압이 떨어지기도 하고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 있다. 아주 드물게는 여자가 주장하는 경련(또는 발작·seizures)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경련은 축 늘어지는 근육실조증(dystonia) 상황에서 팔, 다리가 툭툭 뻗는 듯한 근육경직으로 발현한다. 여자의 주장은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프로포폴에 대한 경련은 일종의 약물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로 피부 단자검사(skin test), 백혈구 히스타민 분비 검사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자에게서는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여자의 휴대전화 검색 내용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살펴보았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약물 관련 검색과 특히 디클로페낙이 한꺼번에 투여될 경우 뇌사가 될 수 있다는 기사를 검색했음이 확인됐다. 경찰은 여자가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하고 자신에게는 아주 낮은 농도의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판단하고 위계승낙살인죄 등을 적용해 불구속 입건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 후 남자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자살에 대한 검색이 없고, 평소 정황상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으며 여자가 남자에 대한 집착과 의심이 강했음을 파악하고 여자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현명했다. 1심은 "박씨는 자신의 의학지식을 이용해 피해자를 죽인 뒤 자신도 약물을 복용해 동반자살로 위장했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도 "박씨는 피해자와 동반자살을 결의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의 (숨지기 전날) 행동은 자살을 계획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행동과 다르고 자살징후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동반자살을 결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의 형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확정했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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