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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금융리더십]③무소불위된 금융권력…정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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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新관치로? "시대착오적" 지적도

[흔들리는 금융리더십]③무소불위된 금융권력…정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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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세종=송승섭 기자] “수 년 전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연임을 시도하면서 청와대의 이름을 팔았다는 풍문이 돌았습니다. 당시 당국에서도 이를 포착하고 내사를 진행했는데 조사 결과 실제론 이 CEO가 윗분과 전혀 연(緣)이 없는 걸로 나왔다는 거에요. 그래서 손을 봐주려고 하는 찰나에 윗선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는 거에요. (웃음) 결국 당국도 (계획을) 접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국내 금융지주회사 CEO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 배경으론 한국금융을 지배해 온 관치(官治) 대신 정치(政治)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 꼽힌다. 해마다 늘어나는 이자이익을 통해 자금 여력이 생긴 금융회사들은 정치권과 유착 관계를 형성했고, 이를 배경으로 관(官)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금융권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금융권 4대 천황’ 등은 이같은 무게추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최근 들어선 다시 관의 영향력이 커지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임기가 남아있거나 연임 도전이 유력했던 금융지주회사 CEO들이 줄줄이 용퇴 또는 중도사퇴를 선언하고 나선 것도 이를 방증한다. 다만 이같은 과거 방식의 관치 회귀가 건강한 문화인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여전하다.


官은 治하기 위해 존재'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관(官)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요. 지금 현직 고위급에 계신 한 금융관료가 과장급이던 시절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나 ○○○ 출신이니 입도 벙긋하지 마시오'라고 호통을 쳤다는 거에요. 하지만 관치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정치권과 국회의 힘이 강해지면서 2000년대 중·후반부턴 관료들의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금융권에 없던 '국회 대관(對官)' 조직이 은행별로 생긴 게 그 무렵이죠.”


약 20년간 대관 현장에서 활동해 온 한 금융인의 회고다. 한국 금융사에 있어 최소 2000년 이전까진 금융사 CEO의 독주가 문제시 되는 일은 드물었다. 금융사 CEO 인선 문제부터 비교적 사소한 여·수신 금리 문제까지 재정경제원 등 관(官)이 완전히 통제하는 '관치'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관료 출신의 고위급 금융권 인사는 "1990년대 금리자유화 이전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이 여·수신금리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면서 "재무부에서 소숫점 단위까지 결정하면, 문서를 수발하는 막내가 한국은행과 은행감독원 등에 통보하고 이게 다시 은행에 하달되는 구조였다"고 전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모피아(Mofia·재무부 출신 금융권 인사를 일컫는 말)' 책임론이 들끓었지만 이 시기에도 관의 힘은 막강했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투입, 혹독한 기업·금융 구조조정, 뒤이은 카드대란의 해결을 주도하면서 관은 영향력을 유지했다. "관은 치(治)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회자된 것도 이 시기다.


관치에서 정치로

관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다.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면서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재임기 시중에 회자된 ‘금융권 4대 천황’은 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말이다. 금융권 4대 천황은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이 중 강만수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부터 경제정책 브레인 역할을 했고, MB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중용됐다. 김승유 전 회장, 어윤대 전 회장, 이팔성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다. 김 전 회장은 하나금융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실질적인 하나금융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우리증권 사장을 끝으로 물러났다가 MB와의 학연 덕분에 회장으로 컴백했고, 어 전 회장은 금융권 경력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MB 때문에 회장이 됐다.


MB정권 시절 이들은 ‘MB금융지주’란 뒷말이 나돌 정도로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회고다. 한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을 수시로 호출해 이야기를 나눴다는 소문,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독대(獨對) 했다는 소문 등은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던 이들의 위세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금융당국(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수장들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정치권력이 금융 영역에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각종 불·탈법 행위도 잇따랐다. 강만수 전 회장은 당시 산은 관리체제 하에 있었던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압박, 지인 회사에 44억원을 투자케 하는 등의 혐의로 지난 2018년 징역 5년2개월과 벌금 5000만원, 추징금 8840만원 징수가 확정됐다.


이팔성 전 회장은 대통령 일가에 뇌물을 전달하고 이를 비망록에 남겼다. 검찰이 공개한 41장의 비망록에는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는 식의 내용이 발견됐다. 비망록은 재판에서 이 전 대통령의 뇌물혐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로 쓰였다. 이팔성 전 회장은 재판장에서도 ‘도움을 기대하고 자금을 지원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김승유 전 회장의 경우 미래저축은행 145억원 부당지원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2011년 9월 하나캐피탈은 경영악화로 사실상 퇴출이 예정된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에 145억원을 투자했다. 김승유 전 회장이 미래저축은행 CEO였던 김찬경 전 회장을 만났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당한 지원이라는 비판이 커졌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주의적 경고 상당의 징계를 내렸다.


‘4대 천황’에 들진 않지만 신한금융지주 역시 라응찬 전 회장 시절이던 2008년 이 전 대통령 측에게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3억원을 건넸다는 이른바 '남산 3억원 사건'을 겪기도 했다. 정치권과의 이같은 커넥션은 후일 신한금융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몰아 넣은 스캔들인 ‘신한 사태(2010)’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서강대학교 출신의 금융인들이 모인 ‘서금회’가 금융권의 실세그룹으로 지목되는 등 정치권과의 유착은 더욱 심화됐다. 이같은 정치권력과 금융권력의 유착의 배경엔 ‘메가뱅크’화 된 은행의 막대한 자금력이 있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한국은행 및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합산 당기순이익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엔 8468억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25년 뒤인 2021년 국내 8개 은행계 금융지주회사(KB·신한·하나·우리·BNK·JB·DGB)의 합산 당기순이익은 19조6137억원으로 22배 가량 증가했다.


입법부도 한 몫

같은 시기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 것은 입법부(국회)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본격화되며 불균형했던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국정감사나 입법 활동 등도 활발해졌다. 예전에는 여당의 경우 정부 편을 들며, 법안 통과 등에서 거수기 역할이나 야당의 공격을 방어해주는 역할 정도였지만 정권 교체 이후인 2000년대 들어서는 입법부가 입법부다운 역할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은행권에 '대관'이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중·후반부터다. 금융지주회사법 등 각종 첨예한 사안에 대해 입법부가 나름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다. 은행권에 국회 대관팀이 첫 등장한 시기는 2000년대 중반이다. 당시 KB국민은행이 외환은행(결국 하나금융에 흡수합병됨) 인수에 나섰는데, '매각자인 론스타의 엑싯(Exit, 자금 회수)을 도와줘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논란으로 언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대관팀을 신설한 것이다.


당시 은행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당 팀이 당해 업무추진비 명목으로만 당시론 큰 돈인 1억8000만원을 썼단 얘기가 회자됐다"면서 "그 이후론 '신한사태'로 골머리를 앓던 신한은행이 대관팀을 신설해 그 비용의 배(倍)를 썼단 풍문이 돌았고 이후 하나은행, 우리은행도 대관팀을 만들면서 은행 대관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감독당국과 갈등이 빚어졌던 상황에서, 은행들은 권한이 커진 국회와 정치권을 또 다른 대응 창구로 삼고 있는 셈"이라며 "다만 최근엔 은행권에 큰 (제도적) 이슈가 없어 대관도 잠잠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잠잠하다지만 여전히 입법부에서 은행의 그림자는 짙다. 대표적인 장면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장이었다. 우리은행의 약 700억원대 횡령사건, 7조원대 가상자산 환치기 사건, 주요 금융사 CEO의 장기 집권 등 현안이 많았지만 5대 금융지주사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출석을 모두 피했다. 국정감사장엔 은행장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전엔 금융사 관계자들이 국회를 방문할 때 선물로 으레 상품권 뭉치를 가져가기도 했다”면서 “한 국책은행장이 이런 ‘관례’를 몰라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단 얘기가 회자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시기 금융지주회사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등 크고 작은 금융사고를 겪었지만 CEO들은 각종 논란에도 연임, 3연임, 심지어 4연임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 관치 역주행?

최근 들어 ‘관치’로의 역주행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다. 신한, 우리, NH농협, BNK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을 앞둔 상황에서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고 강조했다.


물갈이의 신호탄을 쏜 것은 신한금융지주였다. 조용병 회장은 3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돌연 용퇴를 선언했다. 당초 신한금융 안팎에선 조용병 회장의 3연임이 기정 사실화 된 분위기였지만, 막상 조 회장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면접장에서 느닷없이 '용퇴'를 결정했다.


터져나온 외압설과 관련, 조 회장은 자의에 의한 용퇴임을 강조하면서 “금융감독원의 재재심에선 '주의' 처분을 받았지만, (라임자산운용 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관련해) 누군가가 총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곧이어 조 회장의 용퇴에 호응하듯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후 금융회사 CEO의 물갈이가 표면화 됐다. NH농협금융지주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새 회장 자리에 올랐고, 우리금융지주에서도 손태승 회장이 당국과의 줄다리기 끝에 용퇴를 결정했다. BNK금융 역시 김지완 전 회장이 자녀 일감몰아주기 등 각종 의혹에 휩싸여 중도 낙마하고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이 새 회장 자리에 올랐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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