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기자수첩]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尹공약 힘 실어준 박범계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사실상 임기가 한달 남짓 남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려다 언론보도가 나가고 여론이 악화돼 포기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이었던 시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정지시켜놓은 '채널A 강요미수'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복원시키려 했다고 한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불렸던 전자에는 윤 당선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동훈 검사장이, 후자에는 윤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돼 있다.

왜 굳이 지금?

시기가 묘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한 검사장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11번째 무혐의 의견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온 뒤 박 장관이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복원시키는 수사지휘권 행사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박 장관이 '채널A 사건'에 대한 총장의 지휘권을 복원시킨 뒤 김오수 검찰총장을 통해 한 검사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저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왔다.


박 장관 본인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은 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배제돼 있는 전체 사건에 대한 추 전 장관 시절 내려진 수사지휘를 철회시켜 총장의 지휘 체계 아래서 사건의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하려고 한 것 뿐인데, 한동훈이라는 특정인을 겨냥한 지휘권 회복이라는 뉘앙스의 기사가 나와 놀랐다는 것. 그는 총장의 지휘권을 다시 복원시키는 것이 검찰청법 등 여러 법률 체계에 맞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도 했다.


하지만 박 장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려운 건 "왜, 이제서야?", "하필 지금?"이라는 의문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윤 당선인에 대한 징계 청구에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며 추 전 장관이 경질된 뒤 장관직을 넘겨 받은 박 장관은 15개월의 재임 기간 내내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방치했다. 윤 당선인이 총장직을 사퇴하기 전까지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지난해 6월 신임 김 총장이 취임한 뒤 11개월 동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묻고 싶다.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이제야 검토하게 됐다는 해명도 납득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윤 당선인의 대선 출마가 공식화되기 훨씬 전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되살릴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정권에 부담되는 한동훈 무혐의 처분 막으려고?

무엇보다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시도가 그의 말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 역시 한 검사장을 무혐의 처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채널A 사건 관련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자 "장관은 구체적 수사지휘는 총장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총장의 수사지휘가 배제된 이 사건 관련) 완전한 정보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번 깊이 있게 총장 의견도 여쭤보고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총장의 지휘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소도 불기소도 결정하지 않은 채 한 검사장으로 하여금 피의자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총장이 바뀌었고, 윤 총장을 겨냥해 내려진 수사지휘로 인한 총장의 수사지휘권 배제 상태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면, 서둘러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복원시키는 수사지휘를 내려야 했던 게 아닌가?


당시 박 장관은 '휴대전화 포렌식을 이유로 한 검사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미루고 있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나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적법절차 준수 의무 등 여러 가지 형사소송법이 지향하는 가치가 어우러진 사건”이라며 "어떤 장비를 사용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휴대전화) 포렌식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언론을 통해 검찰이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사실상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의 의혹 제기만으로 추 전 장관이 한 검사장을 좌천시킨 계기가 된 '검언유착' 사건은 검찰과 언론이 유착했다는 의미지만 정작 검찰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검찰이 재판에 넘긴 이 전 기자도 법원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수사 개시 2년이 다 되가는 아직까지도 한 검사장을 기소하지 못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하지도 않고 있다.


'검언유착'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추진력을 제공한 사건이다. 한 검사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은 추 전 장관은 물론 제보자 지모씨를 도와 '작전'을 벌인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그래도 박 장관은 서둘러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려 했을까? 기소도 불기소도 안 한 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한 검사장에 대한 사건 처리를 미루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더 지속되지 않았을까?

71년 동안 1번 사용됐던 수사지휘권… 문재인 정부에서만 3번 행사돼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서는 정치 성향이나 검찰에 대한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폭주하는 검찰의 독주를 견제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행사될 수만 있다면 폐지할 이유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헌정사에서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키는 도구로 사용됐다.


장관이 갖는 수사지휘권의 법적 근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다.


장관의 수사지휘권 조항은 1949년 검찰청법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에도 제14조에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한다. 구체적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라고 규정된 이후 줄곧 검찰청법에 존재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실제 행사된 적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만큼 예외적으로 행사돼야 하는 규정이다.


즉 검찰청법상 장관의 수사지휘권 조항은 '구체적 사건 수사에는 장관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정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총장을 통해서만 지휘하라'는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고 본다. 문언 해석상 장관이 직접 일선 검찰청의 검사장이나 수사 담당 검사에게 구체적인 수사 관련 지휘를 내리는 것을 금지하는 취지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으로 여당 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한 추 전 장관은 이 규정을 '장관은 총장을 통해 얼마든지 구체적사건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1949년 검찰청법 제정 때부터 법에 규정됐던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처음 행사된 건 2005년 노무현 정부 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던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반복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와 친북 논란으로 구속 수사가 불가피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까지의 유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속 수사 전례나 영장 청구 기준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였다. 결국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면서 사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강 교수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제도가 생긴 뒤 56년 동안 단 한 번 행사됐고, 이후 15년 동안 행사되지 않던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문재인 정부 들어 무려 3번이나 행사됐다. 특히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횟수로는 2번이지만, 실제 지휘 내용에 포함된 사건 수는 6개에 달했다.


추 전 장관이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킨 명령의 효력을 무력화한 법원의 결정문에서 재판부는 검찰청법 제8조를 언급하며 "법무부장관의 검찰, 특히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의 행사는 필요최소한에 그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여권이 구명 운동을 벌여온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 당시 증인들에 대한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혐의 기소 가능성을 대검 부장회의에서 검토하도록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발행한 수표가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고 실형이 선고된지 6년이 지나 이뤄진 조치였다.


심지어 박 장관은 대검 부장회의 결과 관련자들에 대한 무혐의 결정을 유지하도록 결론을 냈음에도 약속과 달리 이 같은 결과를 수용하기는커녕 법무부와 대검이 대대적인 합동감찰을 벌이도록 다시 지시했고, 감찰 대상에는 대검 부장회의 절차까지 포함시켰다. 하지만 4개월에 걸친 합동감찰에서도 박 장관이 기대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징계 시효도 지난 사안에 대한 실익이 없는 '맹탕' 감찰이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역사가 검증해 준 수사지휘권의 폐해… 장관은 검찰 방패막이 돼야

간사한 인간의 마음보다 신뢰할 수 있는 건 역사적 경험이다.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법에 규정된 배경과 입법취지, 조문의 해석, 제도적 의의 등에 대한 논란을 제쳐 두고 실제 우리나라에서 행사된 4번의 사례를 되돌아보면 과연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이대로 두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장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 수사에 대한 윗선의 외압을 폭로한 뒤 한직을 전전하다 검찰을 떠났다가 '최순실 특별검사팀'에 합류돼 국민검사가 된 윤 당선인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고검장급이었던 직급을 지검장급으로 낮추는 무리수까지 동원해 윤 당선인을 기어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그리고 또 다시 기수 파괴 인사를 통해 윤 당선인을 검찰의 수장인 총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임명 당시 윤 당선인을 ‘우리 총장님’이라고 치켜세웠던 문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은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180도 태도를 바꿨다. 평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그토록 강조하며 ‘검찰개혁’을 외쳤던 범여권 인사들은 윤 당선인이 남의 편을 수사할 땐 환호했지만, 내 편이 수사 대상이 되자 윤 당선인을 임명권자에게 칼을 겨눈 천하의 몹쓸 인간 취급했다. 대통령이 신임하는 장관 후보자를 윤 당선인이 수사할 수밖에 없었던 조 전 장관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의 실체와 불법성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관의 수사지휘권과 인사권은 그런 부담스런 총장의 팔다리를 자르고 아예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이 됐다.


구속 수사가 불가피한 공안사범을 정치적 이유로 불구속 수사하도록 지시한 천정배 전 장관의 첫 번째 수사지휘, 언론의 의혹보도만 갖고 총장의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배제시킨 추 전 장관의 두 번에 걸친 수사지휘, 여당 정치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뒤져보라고 한 박 장관의 수사지휘까지 그 어느 것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행사됐다고 보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처럼 불행하게도 우리 헌정사에서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행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대통령이나 여당의 정치적 유·불리 판단에 따라 내려진 결정을 검찰에 강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검찰권의 문민통제, 선출된 권력에 의한 검찰 통제를 위해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더 이상 수긍할 수 없다는 점이 선례를 통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본다.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오히려 검찰을 정치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추미애·박범계 두 장관이 입증해 준 셈이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과 검찰총장 사이에서 정치권의 외풍을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 장관이 직접 자신이 속해 있는 여당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검찰에 강요하고, 정권을 향한 수사는 가로막는 선봉에 서게 되면 아무리 법을 개혁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은 먼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이 한 달 뒤 대통령에 취임하면 법무부 장관도 당선인이 신임하는 인물로 교체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기로 한데 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켜온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겠다는데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책임이 있는 민주당이 과연 반대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