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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웅 '까미'와 전쟁 영웅 '레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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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경주마 '까미', 동물 안전 보장 제도 발판 마련
'레클리스', 포화 속 전쟁터 누빈 전쟁 영웅

(사진 왼쪽) '태종 이방원'에 출연한 경주마 까미[동물자유연대 인스타그램 캡처]와 6,25 전쟁 영웅 경주마 '레클리스' [연천군]

(사진 왼쪽) '태종 이방원'에 출연한 경주마 까미[동물자유연대 인스타그램 캡처]와 6,25 전쟁 영웅 경주마 '레클리스'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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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생애 동안 쉴 새 없이 인간 욕망에 의해 삶의 권리를 갖지 못하고 이슬과도 같은 삶을 보낸 한 퇴역 경주마(馬)가 큰 교훈을 안겨 주고 있다.


소품 취급받으며 짧은 장면을 위해 생명을 바친 경주마 출신 '까미'가 각종 촬영 현장에서 동물 안전 보장의 제도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또한, 까미는 과거에 머물며 뒤쳐진 방송 제작 환경도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앞서 까미처럼 경주마였다가, 전쟁을 겪으며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功)을 인정받아 죽는 날 까지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생의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마감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났어도 힘든 시간과 괴로운 세월들도 많았을 두 경주마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 교훈 남긴 경주마 '까미'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도중 와이어에 발이 묶여 쓰러지는 까미 [동물권행동 카라 홈페이지 사진 캡처]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도중 와이어에 발이 묶여 쓰러지는 까미 [동물권행동 카라 홈페이지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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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극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말을 넘어뜨려 죽게 해서 동물 학대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고는 지난해 11월 2일,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7회에서 이성계(김영철 분)의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발생했다.


당시 달리는 말(까미)을 넘어뜨리기 위해 와이어를 발에 묶고 잡아당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촬영에 동원됐다가 영문도 모른 채 다쳐 고통 속에서 죽은 까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컸다.


'까미'는 태어나 5년여 간 경주마로 활동하다가 퇴역 후 말 대여 업체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까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일생을 인간의 오락을 위해 살다가 죽었다는 게 대중이 아는 까미의 전부다.


동물보호단체의 KBS 규탄 [연합뉴스]

동물보호단체의 KBS 규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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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중들은 까미의 죽음에 더욱 애틋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태종 이방원' 촬영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동물 학대)'로 고발했다.


국민 사이에선 드라마 폐지 찬·반론과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이어지며 공분이 일었다.


여론이 들끓자 KBS는 사과문을 내놨다. 하지만, 제작진에 대한 비난 수위는 예상외로 높았다.


일부 블로그에선 그간 방송했던 드라마별 '이성계 낙마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는지를 비교하기까지 했다.


국내의 여러 스타들도 까미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해당 드라마에 분노했다.


미국 CNN은 '명백한 동물 학대'라고 지칭하며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동물을 위험에 빠트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까미 사망 사건'을 보도한 미 CNN 방송 [블로그 캡처]

'까미 사망 사건'을 보도한 미 CNN 방송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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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업계에선 "전문성이 떨어지고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연출자의 욕심이 지나치면 제작진과 출연진 등 내부에서 큰 갈등을 일으키고 작품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는 "살아있는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소품으로 여겨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까미 사망 사건'은 동물 생명 존중,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 각종 미디어 매체에 출연하는 동물의 보호·복지 제도 마련의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미국 영화에서는 말이 넘어지는 한 장면을 위해서도 CG를 만든다고 한다.


미국인도주의협회는 영화에 동물이 나오면 '아무 동물도 다치지 않았다'는 걸 인증하는 제도를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전쟁 영웅 군마 '레클리스'


6.25 전쟁 네바다 전초 기지 전투 당시의 레클리스 [연천군]

6.25 전쟁 네바다 전초 기지 전투 당시의 레클리스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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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말(馬) 사랑과 존중은 6.25 전쟁 당시 군마(軍馬)로 활약했던 '레클리스(Reckless)'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지 '코리아루트' 연재]


1953년 3월, 미 해병 1사단 5연대가 중공군 120사단을 막아냈던 연천군 '네바다 전초 전투'.


빗발치는 총탄과 파편 속에서도 4톤의 무반동포 포탄과 부상병을 나르며 전투를 승리로 이끈 '군마(軍馬)'가 있었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전쟁 후 하사까지 진급한 군마의 이름은 '레클리스(Reckless)'.


원래 이름은 '아침 해'였으나, 함께 전장을 누비던 미 해병대원들이 레클리스의 활약을 목격하고 붙여 준 이름으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다.


전쟁 영웅 '레클리스' 또한 군마가 되기 전까지는 '까미'처럼 경주마였다.


레클리스는 1949년 7월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용으로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신장 142cm 체중 410kg의 작은 암말이다.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침 해'도 주인을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가 지뢰 사고로 주인을 잃고 미 해병대 소속 군마가 됐다. 당시 나이는 3세로 추정됐다.


SGT. RECKLESS' 기록에 따르면, '레클리스'는 기동성이 뛰어나고 영리하며 산악 지형에서 일반 병사 10여 명의 몫을 해냈다.


미 해병대와 전투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레클리스 [연천군]

미 해병대와 전투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레클리스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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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클리스'는 1953년 3월 '베가스 고지 전투(Battle for outout Vegas)'로 알려진 5일간의 전투에서 혼자서 총 56km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을 51회 오르내리며 한 번에 4~8개의 포탄을 386개를 실어 날랐다.


이날 사용된 탄약의 95%인 총 4톤이 넘는 포탄을 총탄과 파편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혼자 운반했다.


'레클리스'는 전장에서 포탄 파편에 왼쪽 눈 위를 다치고, 왼쪽 옆구리가 찢어지는 등 두 차례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임무에 복귀해 오히려 부상당한 병사들을 안전지대로 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해병대원들은 '레클리스'를 지키기 위해 입었던 방탄복을 벗어 보호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같은 모든 임무를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말을 조련하는 기수도 없이 '레클리스' 스스로 수행했다는 점이다.


다른 말과는 달리 사람이 한두 번 만 동행하면 경로를 학습해 이후에는 혼자서도 길을 찾아 보급품을 전달했다.


레클리스와 미 해병대원들 [연천군]

레클리스와 미 해병대원들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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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같은 장애물을 피하고, 포탄이 터지면 바닥에 엎드리도록 훈련받아왔다.


'레클리스'는 포탄이나 부상병 수송 외에도 병사 12명이 짊어질 만한 통신선을 메고 통신선 구축을 도왔다.


때로는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동료들의 방패막이가 돼 주기도 했다.


격전 끝에 미군은 '베가스 전초'를 탈환하고 며칠간 이어진 재공격에도 끝까지 베가스 전초를 지켜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E. 워들리는 "레클리스는 우리의 탄약을 지원해주는 생명선이었다"며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 요동치는 전장에서 그(레클리스)는 놀라지 않고 견뎌냈다"고 증언했다.


배빗(Babbit) 상사는 "암갈색 몸매에 하얀 얼굴을 한 '아침 해'가 총탄을 뚫고 생명과 같은 포탄을 날라주는 모습을 보고 모두 감동해서 사기가 진작돼 적을 괴멸시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전했다.


6. 25 전쟁 휴전 이후 우여곡절 끝에 미국 땅을 밟게 된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 1사단 5연대의 팬들턴 기지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팬들턴 기지에서 레클리스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레클리스 계급장 수여식 [연천군]

레클리스 계급장 수여식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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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4월 미 해병대 1사단장 랜돌프 페이트(Randolph M. Pate) 장군은 레클리스를 상병(corporal)에서 병장(sergeant)으로 진급시켰다.


그리고 1959년 8월 31일 레클리스는 하사(staff sergeant)로 진급했다. 이날 캠프 펜틀턴(Pendleton)에서 열린 레클리스 하사 진급 행사에는 1700여 명의 전우들이 참석했고, 19발의 예포가 울렸다.


1960년 11월 10일 레클리스는 팬들턴 기지에서 은퇴했다. 이후 레클리스는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나이가 들며 허리에 관절염이 생겼고 1968년 5월 13일 철조망 울타리에 빠지며 부상을 입었다.


노쇠한 레클리스는 상처를 치료받던 중 진정제를 맞고 눈을 감았다. 미 해병대는 최고의 예우로 장례식을 치렀다.


레클리스는 기지 내 묘지에 명예롭게 묻혔다. 마구간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당시엔 레클리스의 죽음이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여러 훈장을 수여받은 레클리스 [연천군]

여러 훈장을 수여받은 레클리스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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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미국 버지니아주 해병대 박물관에서는 레클리스 기념관 헌정식을 열었다.


기념관에는 레클리스의 동상과 함께 각종 자료가 전시됐다.


2016년에는 레클리스가 살던 팬들턴 해병 기지에, 2018년에는 켄터키 렉싱턴 호스파크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다.


한국에서는 2016년 연천군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다. 미국에서 가져온 실제 레클리스의 '편자(발굽)'와 '총(꼬리털)'이 전시됐다.


'레클리스'는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수여하는 미 '퍼플하트' 훈장 2개, 미 국방부 종군기장, 미 해병대 모범 근무장,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 참전 유엔 훈장, 한국전 참전 훈장 4개 등 많은 수훈 표창을 받았다.


영국은 전쟁이나 국가안보에 기여한 동물에게 주는 '디킨 메달'을 레클리스에게 수여했다.


렉싱턴 호스 파크에 세워진 레클리스 동상 [연천군]

렉싱턴 호스 파크에 세워진 레클리스 동상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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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켄터키주에 위치한 '렉싱턴 호스 파크'에는 레클리스 동상이 전설적인 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마리아 테레사 수녀 등을 '100대 영웅'으로 선정한 바 있는 미국의 유명 잡지 '라이프'는 1997년 미국 100대 영웅에 '레클리스'를 선정했다.


네바다 전초 전투 현장이었던 경기도 연천군과 레클리스가 여생을 보낸 미국에서는 매년 '레클리스'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경기북부=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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