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은 유효…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 자녀 채용과는 다르다"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규정한 현대·기아차의 단체협약이 법에 위반하지 않아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업무상 재해로 숨진 A씨의 유가족이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현대·기아차에서 근무하던 중 화학물질인 벤젠에 노출돼 급성 골수병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이후 유족은 단체협약에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들어 A씨 자녀를 채용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자녀 채용을 규정한 단체협약은 무효라면서 현대·기아차가 A씨 자녀를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1심은 자녀 채용은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단체협약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심은 판단 내용이 조금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위법한 게 아니라면 자녀 채용도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고 했다. 다만 자녀 채용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지난 6월 공개변론을 열었다. 공개변론에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사항을 과연 법원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무효라고 선언할 수 있는지, 자녀 채용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와 다른 지원자의 채용기회의 공정성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됐다.
대법원은 심리 끝에 자녀 채용 단체협약은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일단 단체협약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고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단체협약 내용이 민법 103조에 위배되는지를 법원이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는 등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직계가족을 채용하기로 한 단체협약은 그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채용기회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한 민법 103조 위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것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다"며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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