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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김복득 할머니를 보내며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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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남 통영에서 뜻있는 시민ㆍ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김복득 할머니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향년 100세. 꽃다운 나이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필리핀에서 7년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지만 끝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를 다룬 기사는 한결같이 당신이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를 포함해 올 들어만 다섯 분이 숨져 이제 남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생존자는 스물일곱 명으로 줄었다. 이분들의 통한을 풀어줘야 하는 우리의 책무는 그만큼 더 절박해졌다.

한데 여기서 짚어볼 것이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과의 주체는 누가 돼야 하며, 어떤 형식이어야 하는지 또 그 진정성은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과연 우리가 진지한 논의를 거친 분명한 입장이 있는지 의아해서다. 일본 지도층이 툭하면 망언을 쏟아내는 행태에 비춰보면 두루뭉술한 '진정한 사과'만 요구하는 것은 별 모양의 구멍에 사각 막대기를 밀어 넣으려는 우격다짐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우선 사과 주체를 생각해보자. 일본의 양식 있는 이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예컨대 2000년 도쿄에서 열렸던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에는 일본 측에서도 참가했다. 그런 마당에 우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누구의 사과를 원하는 걸까. 일왕, 일본 총리 아니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를 비롯한 태평양전쟁에 출전했던 일본군 장병들의 집합인가. 막연히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건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과의 수준과 방식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왕의 궁전 앞에 사과 비석을 세우는 것, 총리 명의의 분명한 사과문 발표, 일본 의회의 사과 결의문 채택, 유엔(UN)에서의 사과 입장 표명 등등 우리가 생각하는 사과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지난 3월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쩐다이꽝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불행한 역사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에 대한 사과로 해석된 표현이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의 빚이 있다"에 이은 세 번째 '사과'였다.
이처럼 일왕이든 일본 총리든 위안부 피해에 대해 '유감' '미안' '마음이 빚'이라 언급하면 우리는 이를 사과로 받아들일까. 아니, 그에 앞서 지도자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책임을 느끼는 21세기 일본인은 몇이나 될까. 그럴 경우 '사과'의 진정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문 대통령의 '유감'에 대해 우리 국민 중 진심으로 공감하고 책임을 느끼는 이가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진정한 사과'의 주체와 수준, 방식은 누가 정해야 마땅할까. 몇 분 남지 않은 피해 당사자들일까, 국회의 결의를 통해야 할까 아니면 대통령이 정해야 할까.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자발적으로 갔다는 둥 일부 일본 지도층의 망언을 방치할 수는 없다.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 다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대못을 박아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사과의 주체와 수준, 방식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우리 국민이 납득 가능하고, 일본의 현 세대가 수용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민족적 통한을 푸는 데는 분노와 비난 대신 차분한 논리와 전략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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