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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뉴리더십-비전퀘스트] 선대부터 지켜온 한화家 'M&A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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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뉴리더십-비전퀘스트 새로운 길을 걷다'
<1>김동관 한화큐셀 전무(下)

화약에 이어 석유서 미래 본 창업주
M&A로 성장·위기 열쇠 본 부친
태양광사업 전문성 키운 DK전무
3세대 경영마인드로 신사업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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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한화 그룹이 매년 연초 김승연 회장에게 보고하는 사업계획서의 첫 장에는 항상 그해 검토할 인수합병(M&A) 리스트가 자리한다. 한화그룹에 M&A 계획은 그룹 사업의 방향을 정해주는 이정표와 같다. 한화그룹은 65년 동안 창업주 고(故) 김종희 선대 회장부터 김승연 회장까지 이어진 다수의 M&A로 몸집을 키워왔다. 오늘날 재계 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성공한 M&A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업주인 김종희 선대 회장이 해방 후 정부의 귀속재산이던 조선화약공판(화약제조회사)의 운영권을 회득한 것은 한화그룹의 출발점이자 그룹 최초의 M&A였다. 1981년 갑작스레 타개한 김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2대 회장에 오른 김승연 회장은 당시 7300억원이었던 그룹의 매출 규모를 60조원대(지난해 기준)로 키웠다. 한화그룹의 고민은 이 다음이다. '1, 2세대가 잘 일궈놓은 사업을 수성하면서 어떤 새로운 사업으로 그룹을 키울 것인가'

▲김종희 한화그룹 선대회장(가운데)이 1968년 3월23일 미국 유니온오일사와 경인에너지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은 이를 계기로 석유화학사업까지 진출하며 사세를 크게 넓혔다.

▲김종희 한화그룹 선대회장(가운데)이 1968년 3월23일 미국 유니온오일사와 경인에너지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은 이를 계기로 석유화학사업까지 진출하며 사세를 크게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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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에서 석유화학까지" 그룹 기반 닦은 창업주=한화그룹이 1971년 발간한 사보의 초대 제호는 '다이나마이트 프레스'다. '다이너마이트 프레스'가 바른 말이지만 당시엔 화약을 다이나마이트로 불렀다. 제호에서 드러나듯 화약은 당시 회사의 주력 사업이었다. 김 선대 회장은 1942년 조선인 최초로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해 10년 뒤 이 회사를 인수했다. 한화그룹의 시작이었다. 김 선대 회장은 1959년 국산 다이너마이트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화약사업뿐 아니라 석유화학ㆍ기계로 영역확대에 나선 것도 이 때부터다.
1960년대 들어 김 선대 회장은 각종 M&A로 기계ㆍ석유화학ㆍ무역ㆍ금융 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다. 가장 획기적인 분야는 '경인에너지'로 대표되는 석유사업이었다. 시대적으로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석탄 중심에서 석유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김 선대 회장은 석유사업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정부 공모에 참여했다. 마침내 미국 유니온오일과 합작투자로 석유공장을 짓고, 에너지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선대 회장은 M&A는 화약ㆍ화약 등 이른바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빙그레'로 알려진 식품사업에도 진출했지만 이는 낙농가를 돕겠다는, 국가에 대한 봉사 차원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성장도 위기도 M&A로 해결한 김승연 회장=29세의 나이로 회사를 물려받은 김승연 회장은 그룹의 향후 진로를 '안정적인 성장과 국제화'에 뒀다. 임직원들에게는 "우울 안 개구리 같은 사고를 버려야 한다"며 글로벌 마인드를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의 특별 인터뷰에서는 "전통적으로 내수 위주의 산업에 치중해왔으나 앞으로는 국제화를 과감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략은 M&A였다. 현재 한화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한화케미칼은 김 회장의 첫 M&A 작품이다. 1982년 김 회장은 주위의 우려 속에서도 한양화학 인수를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적자상태였던 한양화학을 인수 후 1년 만에 흑자경영으로 돌렸다. 유니온오일과 합작 형태였던 경인에너지는 1983년 온전히 그룹 소유의 계열사로 인수했다. 이 두 회사는 당시 그룹 매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력 계열사로 성장했다. 그룹 매출은 1980년 7300억원에서 4년 만에 2조1500억원까지 불어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1999년 대림산업과 나프타분해공장(NCC)을 공동경영하고 사업을 맞교환하는 빅딜에 합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는 재계 첫 자율빅딜로 통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1999년 대림산업과 나프타분해공장(NCC)을 공동경영하고 사업을 맞교환하는 빅딜에 합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는 재계 첫 자율빅딜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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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포트폴리오를 기간산업에서 유통ㆍ레저로 넓힌 것도 김 회장이다. 정아그룹으로부터 사들인 명성콘도는 오늘날의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됐고, 1986년 인수한 한양유통은 한화갤러리아가 됐다. 2002년엔 대한생명을 인수해 보험업에도 뛰어들었다. 김 회장의 M&A는 2012년 독일의 큐셀 인수, 2015년 삼성그룹의 방산ㆍ화학사업 인수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선대가 일으킨 사업 17개를 36년간 61개로 확대했다. SPC(특수목적법인)를 제외하면 50여개에 이른다.

1997년 경제위기는 선대의 그림자를 지우고 '김승연식(式) 경영체제'를 확립하는 전화위복이 됐다. 그는 합작법인, 자산, 최종적으로 그룹 외형의 43%를 차지한 주력기업인 한화에너지(구 경인에너지)를 매각하며 약 3조원의 부채를 덜었다. 당시 지지부진했던 매각작업을 해결하고자 직접 현대정유 정몽혁 사장을 만나 "한 발씩 양보하자"고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회장은 주력기업을 파는 동시에 대림산업과 화학제품 생산에 필요한 납사분해시설(NCC) 공동경영이라는 재계 첫 자율 빅딜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전문성 돋보이는 김동관…"본인 만의 경영으로 그룹 키워야"=한화그룹이 처한 경영환경은 과거보다 녹록지 않다. 경영환경은 4차 산업ㆍ친환경 등으로 빠르게 변하는 반면 글로벌 경제는 예전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은 물론 금융, 서비스업까지 신기술ㆍ신사업ㆍ신시장 개척을 요구받는 힘든 환경이다. M&A 역시 세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김 회장은 "10년 후를 내다보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해가야 한다"며 각 사업분야의 '글로벌 1등'을 목표로 내걸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새로운 먹거리 개발, 공격적인 해외진출로 '앞으로의 60년'을 준비하고 있다. 방산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최근 사업을 재편했고, 화학부문은 기존 범용제품 중심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원천기술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 금융 역시 핀테크ㆍ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2017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김동관(오른쪽 첫번째) 한화큐셀 전무가 독일 5대 화학기업인 랑세스의 마티아스 자커트(왼쪽 첫번째) 회장과 만나 자동차 경량화소재와 저성장국면인 글로벌 케미칼 사업의 전망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2017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김동관(오른쪽 첫번째) 한화큐셀 전무가 독일 5대 화학기업인 랑세스의 마티아스 자커트(왼쪽 첫번째) 회장과 만나 자동차 경량화소재와 저성장국면인 글로벌 케미칼 사업의 전망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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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새로운 먹거리 개발에 방점을 둔다. 기간산업 중심으로 그룹을 키워온 선대 회장의 성공법과 기존 사업을 키우고 업종을 다각화한 아버지의 성공법에 더해 그만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한화그룹의 전체 매출액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달한다. 이와 유사한 42%를 금융업이 점유하고 있다. 재계 3세인 김 전무가 이끌고 있는 태양광 사업은 5% 수준이다. 태양광 사업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김 전무 스스로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2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태양광 사업과 처음 인연을 맺을 당시 한화솔라원은 적자 상태였다. 이후 3년 뒤 그룹 내 태양광사업 합병을 주도했고, 그해 2분기 흑자를 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선대 회장이 화약으로 창업을 시작한 것처럼 김 전무는 태양광으로 그룹 내 새 먹을 거리를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3세는 앞선 세대가 일궈놓은 사업영역을 기반으로 손쉬운 사업에만 몰두하기 쉬운데 이를 벗어난 것"이라며 "앞선 1, 2세대가 일궈낸 사업분야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도전에 기초한 적극적 경영참여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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