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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의 갤러리산책] 현대미술 속 ‘사진 혁명가’로 찍힌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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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첸코 사진전 30일부터 한 달간 개최
러시아 구축주의 전면에 내세운 첫 전시
예술과 삶의 일치 추구하며 큰 족적 남겨
무엇을 찍느냐보다 어떻게 찍느냐에 초점

'어머니(1924)' (왼쪽)/ '마야코프스키(1924)'

'어머니(1924)' (왼쪽)/ '마야코프스키(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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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매 작품마다 나는 기존 작품에 무엇인가를 보태는 대신, 새로운 실험을 했다. 내가 제작한 모든 작품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하나 같이 서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들이다.”

알렉산더 로드첸코(1891∼1956)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사진예술가다. 그의 사진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의 요구와 예술 영역이 한곳에 있어야 한다는 예술과 삶의 일치를 추구했다.
러시아혁명(1917)이후 일어난 구축주의(Constructionism: 1920년대 소련에서 전개된 전위 예술운동)를 창립하며, 20세기 미술사조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당시 시대는 혁명 이후 새로운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정신과 예술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가들은 기존 방식 즉, 과학기술 이전인 르네상스시대부터 이어온 회화 방식을 추구했다. 새로운 기계문명이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봉건주의 매체와 그 접근태도로 일관했다.

선구자를 자처한 로드첸코는 이를 비판했다. 원래 화가였던 그는 1921년 현대 사회에 걸맞지 않는 회화의 죽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현대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사진이야말로 기술문명시대의 진정한 매체라고 판단했다. 사진은 회화보다 생산속도도 빨랐고, 복제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속히 퍼지기 때문에 좀 더 대중 친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다리(1925)' (왼쪽)/ '전화하는 소녀(1928)'

'사다리(1925)' (왼쪽)/ '전화하는 소녀(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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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첸코는 사진을 찍는데도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했다. 예술의 가치를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 지각의 혁명을 통한 사회혁명에 뒀다. 궁극적으로는 실험사진을 통해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새로운 인간상’을 탄생시키고자 했다. 그가 시도한 파격적 프레임과 과감한 클로즈업, 역동적 구성은 이미 사진사(寫眞史)에서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크게 초상, 혁명적 시점, 실험, 르포타주, 스포츠 등 다섯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초상사진은 전통적인 스튜디오 사진과 달리 장식과 연출을 모두 제거한 르포타주 형식을 취한다. 소형 라이카(휴대용 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한 1924년 그는 처음 카메라를 구입했고, 주로 부르주아 대신 주변인물을 찍기 시작했다. ‘어머니(1924)’를 통해 몰입하는 인물의 심리상태에 집중했다. 또한 총 여섯 장으로 두 달간 걸쳐 찍은 ‘마야코프스키 시리즈(1924)’처럼 다양한 순간과 상황에서 포착한 사진의 총합만이 그 사람 전체를 나타낼 수 있는 진정한 초상이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그의 사진 실험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점의 혁명’이다. 벌레의 시선(로앵글) 새의 시선(하이앵글)을 각각 차용한 ‘사다리(1925)’와 ‘전화하는 소녀(1928)’는 사진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덕분에 당시 전통적인 수평시점은 파괴되고, 시각적 사유방식이 자유로워졌다.

‘계단(1929)’과 ‘라이카를 든 소녀(1934)’ 작품은 선(線)에 관한 사고다. 로드첸코는 빛과 선의 대조(contrast)를 중시했다. 기존 회화에서 안정된 수평시점을 파괴하고 과감히 대각선 구조를 사용했다. 여자의 위치와 자세 그리고 계단 역시 대각선 구조를 이룬다. 각각의 선들이 대각선으로 교차하면서 사진에 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

'계단(1929)' (위)/ '라이카를 든 소녀(1934)'

'계단(1929)' (위)/ '라이카를 든 소녀(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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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변화의 시대다. 20세기 초 로드첸코가 맞이했던 산업사회처럼 우리는 또 다른 (4차)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그래픽의 발달로 현란한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그의 사진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여년을 앞선 그의 사진과 그가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강력한 울림이 있다.

최근 현대미술은 대중의 생동하는 삶과 갈수록 유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이미지를 제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했던 로드첸코의 예술세계는 국내 예술·정치·산업 전반에 경종을 울린다.

로드첸코는 기존코드에 안주하지 않는 실험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전시 기획을 담당한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최근 현대미술은 미술관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실험이 이뤄진다. 수집가를 생각하지 않는 과감한 실험정신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대부분 작가들은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찍을 것이냐’보다 ‘무엇을 찍을 것이냐’는 소재주의에만 급급하다. 소재만 다를 뿐 담는 그릇(형식)이 똑같다. 하지만 로드첸코는 ‘소재에 맞는 형식이 있다’고 했다. 똑같은 소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형식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결코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해 그의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혁명의 사진, 사진의 혁명: 로드첸코 사진’전이 오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 달간 성남 아트스페이스J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세계와 러시아 구축주의를 전면에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오리지널 프린트 30점을 감상할 수 있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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