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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누가 '품격'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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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김민진 차장

5년 전 종영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당시 24%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로맨스의 주인공인 마흔 한 살 남자들은 훤칠한 키와 훈훈한 외모, 거기에 직업까지 훈훈한 '꽃 중년'들이었다. 그들은 중년의 로망을 보여줬고, 또래들은 거기서 부러움과 질투,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하여 인생의 완숙기로 정의했다. '혹'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혹을 넘겨도 혼미하기만 하다. 이 시대를 사는 신사들이 품격을 차리기엔 생활의 무게가 버겁다. 혁신을 강조하는 직장에선 가죽을 벗겨내는 노력을 날마다 하지 않고서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품격을 차리는 생활은 소위 '잘나가는 분'들만의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국정농단'의 실체 찾기가 몇 개월째 지속되면서 품격 있을 것만 같았던 '그분들'의 민낯이 낱낱이 생중계 되고 있다.
명석한 두뇌와 좋은 배경에 사회적 성공이 어우러져 품격 있어 보였던 그들의 삶을 한 꺼풀 벗겨보니 너무나 한심하게 썩어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잡범 수준의 활약은 날마다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오랜만에 품격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 건 엊그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5차 변론을 지켜보면서다. 탄핵소추 대상인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중환 변호사는 한바탕 소란 뒤에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기자들이 있는 브리핑실로 올라왔다.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나와 신문을 받는 것이 국가 품격에 좋겠나"고 반문했다.

최종변론에 대통령 출석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대통령이 최종변론에 나오면 신문을 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최종변론은 하되 신문은 받지 않겠다는 취지로 헌재에 의견서를 냈다. 지금 대통령은 잠재적 범죄자다. 그로 인해 국가적 위기상황이 초래되고, 전국민적 화병이 촉발됐으며 국론은 분열됐다.

이 마당에서도 국가 품격을 운운하며, 대통령의 특권을 챙기겠다는 건 아연실색할 일이다.

변호사단체의 수장까지 지냈던 대통령 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지난 두 달 15번의 변론을 지켜보는 과정어디에서도 대통령 대리인들의 품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 측의 이날 행동은 여과없이 그 절정을 보여준 사례다.

많은 국민들은 그나마 품격을 갖고 법에 따라 사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국민들 앞에서 국가의 품격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이제라도 법과 원칙을 지키면 될 일이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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