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부동 대한민국, 구태 악습을 끊어라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부세종청사에서 KTX오송역으로 향하는 간선급행버스(BRT)는 최근 오후 4시면 발 딛기 힘들 정도로 가득 찬다.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한 공무원과 민간방문객이 몰리는 시간인 까닭이다. '땡땡이 과장' 사태로 한동안 긴장감이 감돌던 공직사회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다시 느슨해진 분위기다. 출장 등을 핑계로 2시간 일찍 퇴근길에 올라서는 공무원들도 조금씩 늘고 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권이 바뀌면 폐기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정책담당 부서는 사실상 추진동력을 잃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최순실 게이트 이후 공직사회 시계가 사실상 멈춰 섰다"며 "이 타이밍에는 '될 일도 안된다, 굳이 나서서 책임질 일을 만들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책임지는 일'은 피하고 '정해진 일'만 하자는, 느슨해진 공직기강은 주요 현안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해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확산 등과 같은 재난사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모든 피해는 국민 몫인 셈이다.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바이러스가 첫 검출된 지 2주 후에서야 관련 회의를 열어 대처에 나선 것도, 구제역 발생 초기 백신추가접종 시기를 놓친 것도 모두 관료들의 낙지부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마저도 잇따른다. 채찬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부실한 표본조사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실질적으로 백신을 추가접종할 시기를 놓친 것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쏟아지는 경제 현안에 대한 대처도 미흡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 이후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중국인 관광객도 급감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협의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올해 경제정책방향, 부처별 업무계획은 대부분 겹쳐 '알맹이 없는 재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장관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고, 설사 유임되더라도 현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구조상 공무원의 자율성이 꺾이는 부분도 적지 않은 셈이다.
반면 국민정서는 뒤로 하다 청와대, 국회의 말 한마디에 갑작스레 대책이 쏟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출산 대책,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등이 대표적이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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