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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열복(熱福)과 청복(淸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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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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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병조참판 오대익의 71세 생일을 축하한다. 오대익은 다산의 벗으로서 '단양 산수기(丹陽 山水記)', '유수종사기(遊水鍾寺記)' 등에 등장한다. 다산은 1799년에 쓴 축하글에서 선비가 누리는 복을 두 가지로 나눠 말한다. '열복(熱福)'과 '청복(淸福)'. 관직에 나아가 생활하는 자의 복과 은거하여 누리는 복이다.

"대장군의 깃발을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고 온갖 음악을 즐기며 아름다운 여인들을 끼고 논다. 그러나 한양으로 발령받아 내직에 근무할 때는 비단옷을 입고, 높은 수레를 타고 출퇴근하며, 대궐문에 드나들며 묘당(廟堂)에 앉아서 사방의 정책을 듣는다. 이를 열복이라 한다.
깊은 산중에 살며 삼베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샘물에 발을 씻고, 소나무에 기대 휘파람을 분다. 소박한 살림이지만 집에는 악기와 바둑판을 갖추고 책도 가득하다. 마당에는 백학(白鶴) 한 쌍이 노닐고 신기한 꽃과 나무, 장수에 도움 되는 약초를 심는다. 때로 스님이나 신선 같은 이들과 왕래하며 즐기다 보면 세월이 오감을 모르고, 정치가 잘되는지 엉망인지도 모른다. 이를 청복이라 한다.

이 두 가지 복은 성품에 따라 달리 취할 수 있지만 하늘은 청복을 몹시 아낀다. 그래서 열복을 누리는 이는 많아도 청복을 얻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열복과 청복을 모두 얻어 누리겠다'고 하면 모두 비웃을 것이요, 하늘도 그 오만과 망령됨을 미워하리라."(정약용, '다산시문집' 13)

송혜진은 '선비들의 음악 공간'이라는 글에서 "열복의 음악은 풍악(風樂)이며 청복의 음악은 금가(琴歌)"라고 했다. 선비의 음악이란 청복을 추구하며 마음을 바르게 다스려 사특한 생각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는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마음을 바뤄 사특함을 물리침'은 곧 선비의 삶이요 기쁨이라.
영어 단어 'Back'은 오묘하다. 사람의 등이며 동전의 저편이며 책의 표지이다. 서양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가치를 간직한 곳이라. 한때 유행한 '님비(Nimby)'란 "내 뒷마당에는 안된다"는 뜻이다. Not in my back yard. 열복은 나아감이 있는 곳에, 청복은 물러남이 있는 곳에 깃들인다. 열복은 front yard의 호화로움이요 청복은 back yard에서 누리는 안온함이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던 해, 스승께서는 입학식도 하지 않은 제자들을 이끌고 분주히 답사를 하시었다. 첫 답사는 용인에 있는 무애 선생의 묘소, 두 번째는 다산의 고택이었다. 고택이 능내에 있어 흔히 두물머리라 한다. 두 강물이 머리를 맞대듯이 만나 하나의 강으로 흐르는 곳.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마침내 한강을 이루는 지점이다.

다산은 1783년부터 1799년까지 한양에서 나라일을 하고 이후 19년을 유배 생활에 바친다. 유배를 마치던 1818년에 '목민심서'를 내니 세상을 향한 푸른 눈빛을 알겠다. 그가 죽기 전 자녀들에게 당부하였다.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티라." 그의 열복은 어디에 있으며 청복은 언제였는가.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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