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흔한 집사 대신 '고양이 중심주의' 선언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연기 한 줌과 불길 한 자락, 가장 빛나는 별 두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를 더해 만들었다. 무엇을? 인문학자 진중권(54)이 명명한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와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말이다.
진중권은 고양이를 '익숙하면서 낯선. 항상 내 곁에 있는 것 같아도, 매번 어딘가 멀리 있는듯한 언캐니(uncannyㆍ묘한)한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면에선 우리보다 더 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척 친한 것 같은데, 영원히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어떤 낯선 느낌들이 늘 남는 것, 그게 고양이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죠."
그는 '성서에는 왜 고양이가 안 나오나', '성 요한의 장작불', '마녀의 검은 고양이'라는 테마로 역사 속 고양이를 되짚은 뒤, '고양이를 조심하라', '고양이 없는 웃음이란', '고양이 이름 짓기'를 말한다. 이어 쇼펜하우어와 레비나스, 데리다 등 철학자들과 그들이 사랑한 고양이, '고양이 되기'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진중권은 진정한 집사가 되려면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고양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접 사료를 먹어보고 목으로 고양이 소리를 내고, 혀로 고양이털을 핥고, 머리로 고양이 몸을 부비고, 코로 고양이 항문낭의 냄새를 맡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고 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의 낡은 집사문화를 버리고 새롭게 '고양이 중심주의'를 선언한다. 이 같이 당차게 나오는 데는 루비의 증언이 한 몫 한다. 루비가 그에게 전했다. "초보 집사들은 자기들이 우리를 데려왔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우리랑 좀 지내다 보면 슬슬 너희가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외려 우리에게 '간택'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야. 다시 말해 우리를 데려온 것이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고양이계의 어떤 영적인 힘에 의해 미리 결정된 사건, 그리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도록 운명 지어진 사건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지. 바로 그때 집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집사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또 그는 동물이 인간에게는 없는 다른 능력, 즉 인간의 이성보다 우월한 본능이 있다는 점을 들고 19세기 미국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이 본능을 열등한 능력으로 폄하해도, 결국 그 본능이 오직 자기만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성보다 무한히 우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능은 열등한 이성이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 우수한 지성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그것을 피조물에 '직접' 작용하는 신성한 정신 그 자체로 볼 것이다."
진중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면 더 이상 "애기야 엄마 왔어" 혹은 "아빠 왔어"라는 말을 내뱉는 무식한(?) 집사가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순간이 온다. 이 역시 고양이의 위력인가. 무심한 듯 너그러이 집사를 이해해준 고양이에 대한 감동과 더불어 궁금증이 또 하나 는다.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으며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일한다. 저서로 '이미지 인문학 1, 2', '미학 오디세이 1~3', '진보의 재탄생' 등이 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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