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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이웃이 되어 주세요/여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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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비가 오는 걸 아는
식물의 마음
몇이나 될까요.
창가에 올려놓은 작은 화분에
꽃이 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 비가 그치고 난 뒤에도 꼭
기억해 줘.
나는 멀뚱한 표정으로
꽃 지고 나면 누가 떠올리겠어, 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우리 삶을 망쳐 놓을 거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몇 달째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하늘은 어둑어둑했습니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옛날처럼 나는 아픕니다.

[오후 한詩] 이웃이 되어 주세요/여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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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의 결은 무척 두텁다. 그러나 나는 하나만 말하고자 한다. 후회는 늘 뒤늦다. 후회(後悔)니까. 후회할 줄 미리 알고 일부러 일을 그르치거나 잘못된 언행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삶은 대부분 반복적이어서 후회하는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반성하고 깨우쳐 같은 일이 닥쳤을 때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된다. 그러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어떤 일은 전혀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누가 떠올리겠어"라는 말에는 저 꽃은 지더라도 다른 꽃이 다시 필 것이라는 자만이 내재해 있다. 그때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 버렸는데, 다른 꽃이 저 자리에 다시 필 줄 알았는데, 그런데, 꽃은 피지 않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하늘은 겹겹으로 어둑어둑해지기만 한다. 마치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처럼, 그 사람과 함께했던 그 옛날들처럼 말이다. "기억해 줘"라는 그 한마디가 삶 전체를 이렇게까지 송두리째 망쳐 놓을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한마디만 얹자. 어쩌면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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