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詩] 불가사의―침대의 필요/김선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그런 날 있잖습니까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사람이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릴 때
 그런 날은 열 일 제치고 침상을 정리합니다
 날 선 뼈들을 발라내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가장 좋은 침대보를 새로 씌우죠

  이봐요, 여기로

 거울 앞으로 가 거울 속의 사람을 마주 봅니다
 거울 속으로 손을 뻗지 말고
 여기서 손짓해 거울 밖으로
 그를 꺼내야 합니다
  어서 와요.

 정성 다해 만져줘야 할 몸이
 이쪽에 있습니다

 ----------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힘든 날이 있다. 비겁해서이기도 하고 나약해서이기도 하고 여하튼 너무 무참해 거울에 언뜻 비친 너절하고 추한 나를 마주 보기 어려운 날이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당연히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어찌해야 할까, 저 분노를, 아니 실은 결코 다스릴 수 없는 이 깊디깊은 자책을 말이다. 시인은 말한다. "그런 날은 열 일 제치고 침상을 정리"하라고. 저 맑은 볕에 저 투명한 바람 곁에 "날 선" 나를 걸어 두라고. 그리고 "가장 좋은 침대보를 새로 씌우"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자신을 "손짓해 거울 밖으로" 꺼내라고. 여기 "정성"을 다해 "만져줘야 할 몸이" 있으니 이리로 "어서" 오라고 말이다. 이 시를 두고 굳이 프로이트를 떠올릴 것까진 없다.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록 누추하고 비루하고 때론 끔찍하고 참담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사랑은 처절한 각성이자 고통스러운 결행이다.
채상우 시인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서울대병원·세브란스, 오늘 외래·수술 '셧다운' "스티커 하나 찾아 10만원 벌었다"… 소셜미디어 대란 일으킨 이 챌린지 '바보들과 뉴진스' 라임 맞춘 힙합 티셔츠 등장

    #국내이슈

  • 밖은 손흥민 안은 아스널…앙숙 유니폼 겹쳐입은 축구팬 뭇매 머스크 베이징 찾자마자…테슬라, 中데이터 안전검사 통과 [포토]美 브레이킹 배틀에 등장한 '삼성 갤럭시'

    #해외이슈

  • [포토] 붐비는 마이크로소프트 AI 투어 이재용 회장, 獨 자이스와 '기술 동맹' 논의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PICK

  • 고유가시대엔 하이브리드…르노 '아르카나' 인기 기아 EV9, 세계 3대 디자인상 '레드닷 어워드' 최우수상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