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놀림이 재바른 20대 젊은 직원에게 전후 사정을 전했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싸게 구입해 보겠노라고 하면서 '아재 세대'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린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이 채 지나기도 전에 택배가 도착했다. 재미있는 것은 중고 책 가격이 새 책 원가의 3배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라면 고서가 아닌 요즘 책도 경제적으로 투자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책을 사기만 했지 팔아본 적이 없는 내가 소유한 책들도 인터넷 시장에 올려볼까 하는 호기심까지 발동했다.
'모로하시 사전'은 장인정신의 삼십년 결정판이다. 한참 작업 중이던 서재가 2차대전 말기 교토(東京)공습으로 모든 자료가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성에 하늘마저 감동했는지 3쇄 교정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흰 종이에 박힌 촘촘하고 흐릿한 글씨를 오래도록 살피다 보니 백내장은 날로 악화되어 갔다. 수술까지 했으나 한 쪽 눈은 결국 실명했고, 남은 눈도 시력 저하로 작은 글자는 돋보기를 이용한, 뼈를 깎는 고통의 결과물이었다.
이 사전편찬의 기획자이면서 후원자요, 또 실무책임자로서 숨은 공신인 대수관(大修館)서점의 스즈키 잇페이(鈴木一平)사장은 아들 3명의 학업까지 중단시키고 이 간행사업을 돕도록 했다. 현재 최대불교사전을 지향하는 가산불교대사림 작업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 지난(至難)함은 익히 보고 듣고서 알고 있다. 지금같이 컴퓨터 편집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한 글자 한 글자마다 활자를 제작해야 하는 그 시절의 노고는 상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얼마 전 돈황학대사전이 출간되었다. 자료수집과 집필에 13년이 소요되었고 한글번역에 4년이 걸린 책이다. 독자로서 사명감과 함께 늦게사 중고 사전을 샀던 일을 반성도 할 겸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크고 무거운 책인지라 두겹으로 겹쳐진 튼튼한 끈이 달린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늘 어깨에 메고 다니는 회색빛 헝겊가방에 넣기가 부담스러운 것을 따로 담아야 할 때는 이 쇼핑백을 재활용하고 있다. 겉에 디자인으로 박아놓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명언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것을 들고 자주 종로거리를 활보해야겠다.
원철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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