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이러쿵저러쿵'
스폰서는 원래 행사나 자선사업에 기부금을 내는 후원자를 뜻한다. '연예인 스폰서'란 말로 쓰일 때는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대체로 '성상납을 미끼로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2009년 3월7일 30세로 자살한 배우 장자연은 유서 속에 연예인 성상납 리스트를 남겨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으로 언론사대표, IT업체 대표, 영화 감독, 드라마PD 등 13명이 거론되며 경찰 추적을 받았으나 사법처리는 없었다. 그녀에게 성상납과 술접대를 강요했던 곳은 서울 삼성동의 한 건물이었다. 1층에는 와인바가 있고 2층은 사무실, 3층엔 침실이 있는 묘한 구조의 빌딩이었다.
스폰서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지난 13일 SBS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뤘다. 시크릿 리스트를 공개할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던 방송사는 그러나, 정작 그 '폭탄'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배정훈PD는 "리스트를 밝히지 않았다면서 알맹이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관음증적 아쉬움'일 뿐"이라고 받아치며 "뉴스는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여성과 재력가를 연결했던 브로커가 등장해 증언했고, 또 스폰서 관계를 맺은 연예인 지망생도 나왔다. 또 한 제보자가 "스폰서 리스트에 수많은 연예인과 연예인 지망생들의 프로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폰서 편 말이죠. 뒤늦게 봤습니다. 마치 연예계 전반에 걸쳐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비춰져 짜증이 치밀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잘못된 선택으로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말을 이어가는 친구를 보곤 가슴이 아파서 말을 잃었습니다.(......) 문제는 방송 후였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은 마치 '유명 연예인=스폰서'라는 공식을 다는 듯 하군요.(......)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지망생 및 현재의 연예인까지도 '너도 혹시'라는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이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죠. 마치 '연예계에서 스폰서가 없이는 성공도 무엇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성공과 돈을 위해선 너의 도덕을 다 팔아라'고 말하는 것 같아 혀를 찰 수 밖에 없었습니다."(김옥빈)
"싫다. 힘 빠지고. 일부의 일이 전체인 것처럼 오해받을 땐 더 속상하고. (......)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일 순 있어도 인생을 속일 순 없다."(박하선)
"시청 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이런 일로 배우의 꿈을 접게된 어린 소녀의 이야기였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땀과 노력으로 배우의 꿈 충분히 이룰 수 있다. 특히 이 방송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많은 사람에게 각성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김민정)
"자기의 욕심을 위해 돈으로 그녀들의 꿈과 소망을 짓밟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난다. 특히 그것이 분명 옳은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부와 명예를 위해 그 길을 선택한 그녀들에게도 화가 난다."(황승언)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 스타들은 저마다 자신이 그 리스트에 속하지 않았음을 전제하고 있으며 연예계 전체가 성상납 사슬로 엮인 것처럼 결과적으로 인식되게 한 방송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 연예계에서 스폰서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구조적 생태계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연예계의 스폰서 스캔들은, 우리 사회의 '스타시스템'에 뒤엉켜 있는 부정과 부패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전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있으나 광범위하게 번져 있으며, 재계와 정계가 이미 깊숙이 이런 향응문화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속에는 불법과 폭력을 비롯한 다양한 범죄 또한 끼어 있다. 대중들의 우상이며 동경이며 위안인 스타들 뒤에 드리운 이 불편한 향락의 그림자들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청산하는 일은, 국가 전반의 품격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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