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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건다는 외로움, '히말라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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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또 하나의 산악인이 있다. 영화 ‘히말라야’의 엄홍길 대장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다. 과거에는 두 사람을 비교해 우위를 가리려는 이들도 많았다. 누가 더 대단한 산악인이냐는 물음은 우문(愚問)이다.

산을 정복하겠다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이다. 산악인의 땀과 눈물, 피맺힌 사연을 어찌 순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나. 어느 산악인의 삶이 누군가에게 교훈이 된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산악인, 그의 이름은 박영석이다. 그는 얼음과 눈으로 가득한 히말라야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박 대장은 한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산악인 중 한 명이다. 그는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를 완등했다. 또 지구 7대륙 최고봉도 완등했다. 남극점과 북극점도 걸어서 다녀왔다. 박 대장은 그렇게 ‘산악·탐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세계 산악 역사에 기록을 남긴 이 한국인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의 심술 앞에 눈물을 삼켰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급변하는 기상과 잦은 눈사태 때문에 가장 오르기 힘든 산으로 평가받는다.

박 대장은 안나푸르나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실종사고를 당했다. 산악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활동에 나섰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2011년 10월, 히말라야는 자신이 한 번 품은 박 대장을 다시 내놓지 않았다.
박 대장은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히말라야 루트 개척은 역사에 기록될 대단한 일이지만, 목숨을 건 위험한 도전이기도 하다. 박 대장은 이미 자신의 이름을 충분히 알린 인물이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명성을 활용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히말라야와 단절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박영석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실패의 역사’에 시선을 고정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왜 죽음의 위험을 겪으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까. 박영석도 사람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인과 박영석이 다른 점은 실패가 두려움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게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영하 수십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칠흑 같은 어둠에서도 도전 의지를 잃지 않았던 산악인 박영석. 실패를 맛볼 때마다 되뇌었던 그의 좌우명은 결연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히말라야에서도 변치 않았던 그의 좌우명은 후배 산악인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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