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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 작가 이불, '조곤조곤한 이야기' 담은 갤러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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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5년만에 국내 갤러리 개인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80년대 후반부터 설치·조각 등으로 도발적 메시지
2005년부터 '나의 거대 서사' 주제로 '인피니티' 작업
"'거울'과 '무한대 모빌'…기존 큰 작품들의 생명력, 작은 스케일에 담아보려"
작품 속에 들어간 이불 작가

작품 속에 들어간 이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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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제 자신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어떤 보편적인 것까지 전달될 수 있었으면 해요. 사랑에 빠질 때 상대방의 전 생애를 다 아는 건 아닌 것처럼."

이불(51)은 이 시대 우리나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5년 만에 국내에서 갤러리 개인전을 열었다. 그동안 거대한 스케일로 국내외 전시장을 압도하는 작업을 줄곧 해온 그였다. 작가는 잠시 "웅장한 웅변에서 조곤조곤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서울에서 자신의 작업세계를 압축한 신작 10여점을 선보였다.

이번 갤러리개인전은 지난 2005년부터 지속 중인 '나의 거대 서사'를 대주제로 갖는 '인피니티'(Infinity, 무한대)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존 작업과는 달리 갤러리 공간에 맞게 작품 사이즈가 줄었지만, 소재 면에서는 더 다양해졌다. 또한 시리즈의 핵심 재료인 '거울' 외에도 천, 금속, 전선, 플라스틱, 준보석 장식재, 체인, LED조명 등 여러 종류의 기성품이 조합돼 천장에 매단 형태의 조각들이 주를 이뤘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 같은 시리즈 작품은 깨진 거울들을 바닥과 벽면에 이어 붙인 대형 설치물과 전구가 박힌 우산형태의 대형 조각이었다. 이 '인피니티' 시리즈는 지난 2012년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또한 현재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위치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에도 오로지 크리스털만을 재료로 한 대형 작업으로 같은 시리즈물이 설치돼 있다.

이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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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오른쪽 엄지손가락 마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작가는 "작업할 때 습관적으로 한 근육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다보니 무리가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관에서 만났을 때보단 다소 부드러워진 표정도 엿보였다. 작가는 오랜만에 갤러리전시를 열게 된 배경에 대해 "계속 큰 규모로 전시를 하다보니 '다른 방식의 점검을 놓칠 수 있겠다', '매너리즘에 빠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 모리미술관과 우리나라 서울관, 유럽에서의 회고전 등 이어왔는데, 큰 스케일에서 뿜어져 나온 작품의 생명력을 작은 스케일에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갤러리 공간 안에 벽에 건 깨진 거울 작품, 천장에 매단 형이상학적 모빌조각. 작품들은 모두 주변의 사물을 반사하거나 빛나고 있다. 특히 모빌은 내부에 거울과 LED조명이 들어있어 특정한 형태의 모양들을 끝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는 "글이나 소설, 시에도 거울에 대한 얘기가 많다. '거울'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비 내린 거리의 표면도 될 수 있다. 반사시키는 무엇이든 거울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것과 관계있다"며 "거울 작품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대면'을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깨진 거울을 두고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방법을 한번 쯤 생각해보자는 제스처다. 날카롭고 파편화된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들이 한데 모여 보인다. 그림은 한 부분을 정해서 그려나가지만, 거울은 관람객이 이동하는 모든 순간을 담는다"고 했다.

이불, '무제', 인피니티 시리즈, 스테인레스스틸, 알루미늄, LED조명, 유리거울 등 혼합매체, 2015년.

이불, '무제', 인피니티 시리즈, 스테인레스스틸, 알루미늄, LED조명, 유리거울 등 혼합매체,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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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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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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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시리즈 중 하나 '무제'

인피니티 시리즈 중 하나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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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모빌 내부에서 무한대로 확장하는 빛과 형태를 "생애 주기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는 또한 작품의 재료인 여러 기성품에 담긴 의미와도 연결된다. "많은 기성품들이 애초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발명됐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형태도 변하고 용도도 바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대중적으로 흡수된다. 예를 들어 모빌 조각에 담긴 합판은 사실 2차세계대전 때 부상자를 옮기기 위해 개발된 재료지만 지금 이렇게 미술품 소재로 쓰고 있다. 일단 무언가가 태어나면 여러 의도에 의해 성격이 바뀌게 된다. 그것은 무한대다. 고정되지 않는다. 라이프 사이클(생애주기)을 보여준다."

그가 이번에 제작한 신작 모빌에는 두 가지 특징이 더 있다. 기존에 쓰지 않던 색감과 작가만의 문자가 새겨진 점이다. 작가는 "매니아들만 쓰는 에스페란토와 모스 기호를 혼합해 작품마다 글귀를 넣었다. 뜻풀이를 하면 '진실이 아닌', '비현실적인', '새로운', '나나 당신이나 참' 등이다. 가벼운 것도, 심각한 것도 있는데. 사실 글자 자체가 사람의 심정을 완벽히 설명하기 힘든 한계가 있단 걸 보여주려고 했다"고 했다.

예술을 하는 행위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물었다. 그는 "예술을 하는 일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큰 부분인가 하는 걸 늘 의심하고 산다. 예술이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예술로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라 작업이 내 스스로에게 치유이길 바란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꼭 치유가 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했다.

이불은 1980년대 후반부터 퍼포먼스, 조각, 설치, 회화, 드로잉에 이르는 다매체 장르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두각을 나타낸 작가다. 과거 작업에서 그는 여성인 자신의 몸을 사용해 여성 억압에 대한 비판을, 구슬이나 비즈와 같은 장식 재료로 여성성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만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신체 조각 '사이보그' 시리즈로 이전보다는 묵시적이고 함축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현실과 이상에 대한 탐구가 '사이보그'라면, '인피니티'가 포함된 '나의 거대 서사'라는 시리즈는 인간과 미래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다.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이불은 뉴욕 현대미술관ㆍ뉴 뮤지엄, 파리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도쿄 모리미술관을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스페인 카스텔로 현대미술관 등을 거쳐 오는 10월 개막하는 캐나다 밴쿠버 갤러리에서 개인순회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역시 같은 달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프로젝트 전시를 할 예정이다. 작가는 "내년 3월쯤 시드니비엔날레에 신작을 소개할 계획"이라며 "유적지 섬 안에 배를 건조하던 높이 7m 창고에서 전시가 이뤄지는데 기대가 된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 02-734-9467.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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