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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근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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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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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들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요? 예를 들면 요즘 한참 전근대적인 경영권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 재벌기업의 회장 연봉은 공시된 것으로만 대략 50억원가량 됩니다. 공시의무가 없는 기업들로부터의 수입을 합치면 훨씬 클 테니, 해당기업 신입사원 연봉의 수백 배나 되는 셈입니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더 입이 딱 벌어지는 연봉도 흔합니다. 미국의 경우 대표이사와 신입사원의 연봉 격차는 평균 300배가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합니다. 얼마 전 손정의 회장이 구글 출신의 니케시 아로라를 영입하면서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약 1600억원가량을 주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연봉을 받으면 더 열심히 일할까요? 많은 연구들을 종합하면 금전적인 인센티브와 좋은 성과와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동료들의 인정, 업무가 주는 즐거움과 같은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치지요. 하지만 우리의 직관은 어쩐지 돈을 많이 주면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처럼 느낍니다.
이처럼 직관, 또는 부분적 경험이 체계적인 연구와 충돌하는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저는 때로 심한 자괴감을 느낍니다. 경영 분야의 베스트셀러, 특히 새로운 유행어를 만드는 책의 상당수는 사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담고 있으니까요.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회사가 잘 될 것이라든지 (성과 대부분은 겉으로 보기엔 '평균적인' 사람들이 냅니다), 위대한 리더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든지 (좋은 리더십에 대한 단일한 모델은 없습니다), 직원들을 성과에 따라 상대평가 하라든지 (단순한 줄 세우기는 부작용이 더 큽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든지 (이건 종교입니다) 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분들이 그걸 믿고 있습니다.

어떤 의사결정에서 직관이나 경험 대신 과학적인 근거를 따르는 일은 꽤 귀찮은 일입니다. 일상의 모든 사소한 의사결정을 이런 식으로 하면 삶이 너무 복잡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의 중요 의사결정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나 '느낌'을 따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군의 경영학자들은 '근거기반 경영(EBM: Evidence Based Management)'이라는 개념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경영학의 누적된 연구성과를 근거로 한 경영의사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경영학에서 만들어진 연구결과들은 실제 경영자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하도록 도구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영자들에게 논문을 수십 편 읽고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은 모든 환자들이 의학논문을 찾아 읽으라는 것만큼이나 지나친 요구이니까요.
근거 있는 의사결정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갈등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경험이나 느낌을 기반으로 입장을 미리 정하고, 거기에 맞는 정보만을 취함으로써 생기는 갈등이나 대립은 기업의 관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충분한 과학적 근거 위에서 토론을 전개하면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대강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라는 과학적 검증절차를 생략한 뒤 겪고 있는 갈등과 비용은 생생한 반면교사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통념과는 충돌하는 경영학 연구결과를 조직에 도입하는 실험적인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위계를 모두 없애버린 자포스의 예는 잘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대표이사의 임금을 직원 최저수준으로 낮춘 그래비티 페이먼트라는 회사의 사례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 댄 프라이스는 직원들의 연봉 하한선을 7만달러로 크게 높이고, 11억에 달하던 자신의 연봉도 이 하한선으로 낮추었습니다. 이 결정이 과연 잘 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고 그 성과도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결정은 꽤 '근거'가 있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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