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서 모티브, 집단 이기주의의 추악함 거칠게 그려
배우들 선 굵은 연기 인상적이지만 섬세한 스토리 표현은 아쉬워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국내 관객은 공포영화에 인색하다. 지난 2년 동안 연도별 관객 수 40위권에 진입한 작품이 '컨저링(2013)' 하나뿐이다. 그해 226만2758명으로 27위를 했다. 국산영화의 부진 탓이 크다. 한때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지만 '깜짝쇼' 수준의 천편일률적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도태됐다. 제작 기피 현상이 생겼을 정도. 씨가 마른 건 아니다. 미스터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 덧입혀져 명맥을 이어간다. 특히 '연가시(2012·451만5833명)', '숨바꼭질(2013·560만4103명)' 등은 우려를 넘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김광태 감독은 "오래 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라면서 "'약속'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와 그것이 깨지면서 생기는 집단 이기주의를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마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붓칠은 매우 잔혹하다. 미래를 빼앗는 수준을 넘어 마을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 과한 설정은 그만한 이유가 따라야 관객이 납득한다. 이런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 공포와 판타지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국산 공포영화는 빠른 제작의 맛에 취해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지면서 관객의 신뢰를 잃었다. '손님'의 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시대적 배경은 '웰컴 투 동막골(2005)',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끼(2010)'와 '혈의 누(2005)'를 연상케 한다. 모두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 김 감독은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건 없다"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은 세 영화에 비해 떨어진다. 일단 캐릭터가 단면적이다. 우룡(류승룡)과 촌장(이성민)의 갈등에 집중한 탓에 다른 인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촌장의 양아들 남수(이준)가 대표적이다.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을 욕심에 아버지가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지 수행하는 캐릭터지만 정작 촌장과의 관계는 거의 생략됐다. 야욕을 품는 장면도 없다. 미숙(천우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이유 등이 불명확하다. 김 감독은 "우룡과 촌장의 관계에 힘을 줄 필요가 있었다. 영화가 방만하게 흐르는 것도 막아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우룡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의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보여준다. 좋은 식재료를 레시피 없이 뒤죽박죽 섞어놓은 느낌이다. 남수와 미숙의 촬영 분도 영화에 삽입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편집에서 대부분이 잘려나갔으니 경제적인 촬영을 했다고 보기 어렵겠다.
이 영화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메타포다. 김 감독은 6월 9일 압구정 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영화는 현재를 담을 수밖에 없고 담아야 한다"며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이 그 때보다 더 좋아졌는가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월컴투 동막골', '이끼'와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동석한 류승룡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티브를 우리나라에 맞게 고급스러운 비유와 상징으로 녹여낸 것 같다"며 "그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이걸 감독이 의도하고 썼다면 정말 천재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가리키는 정치 사회적 메타포는 매우 직접적이다. 욕심에 가득 찬 인간을 사람의 살까지 뜯어먹는 쥐떼로 형상화한 것 정도는 무난하다. 그러나 극 후반에 촌장이 어떤 인물인지를 설명하면서 일본군 장교복과 엔화 뭉치를 보여준다. 쥐떼에 저항하는 그에게 일본검도 쥐어준다. 죽음을 맞는 곳에선 이보다 더 속이 훤히 보이는 장치도 나온다. 메타포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김 감독은 "독재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마련한 장치"라며 "1950년대에 숨길만한 악행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다가 일본의 앞잡이를 떠올린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에 큰 메시지를 담은 건 아니지만 수용자의 견해라면 충분히 받아들이겠다"며 한 발을 뺐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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