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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 26주기, 유년의 풍경 속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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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노래한 엄마ㆍ어머니…모친은 ‘그 집’ 떠나 안양천 너머에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시인 25주기 추모문학제에서 성석제 시인이 고인을 회고하고 있다.(사진출처:광명시청)

기형도 시인 25주기 추모문학제에서 성석제 시인이 고인을 회고하고 있다.(사진출처:광명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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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겨울 版畵1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가 한 줌 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빈 방에 외풍이 들이치던 유년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기형도(1960~89) 시인의 작품들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무슨 시를 쓴지 몰랐다. 아들의 25주기였던 지난해 사람들이 아들의 어느 시가 가장 좋은지 물었지만 어머니는 “없다”고 답했다. “아들 생각이 나서 보기가 싫었다”고 말했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한겨레신문은 전했다.

기형도 시인의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시절 ‘양학당’에서 잠깐 교육을 받았을 뿐, 글을 깨치지 못했다. 시인의 모친 장옥순(82) 씨는 지난달 서울 방배동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성인 문자해득’ 교육 프로그램 졸업식에 참석했다. 장 씨는 금천구가 운영하는 18개월 과정을 마치고 초등학력을 인정받았다.

장 씨는 아들과 함께 25년을 함께 산, 어린 아들이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 간 자신을 기다리던 경기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옛집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산다.

오늘은 시인의 26주기 기일이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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