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중학 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 이수자들 특별한 졸업식…서울시내 50~80대 500여명 한글 배우며 詩쓰기반 등 참여 "죽을 때까지 이 기쁨 놓지 않겠다"
홍양순(69)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서기 역할을 하기 싫어 꾀를 부린다고 뒷말을 했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한다는 두려움에 눈물 흘렸던 그날의 말 못할 아픔을 다른 이들은 잘 모른다. 그런 그가 성동문화원의 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에도 진학했다. 홍씨는 이제 여전도회 서기도 맡기로 했다.
'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이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학력 부족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불편을 느끼는 이들을 대상으로 문자해득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마련된 교육프로그램이다. 만 18세 이상 성인 무학자 또는 비문해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감이 설치·지정한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 이수자에게는 평생교육법에 의해 초등학교 및 중학교 졸업학력이 주어진다. 현재 서울 인구 963만명 중 국가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중학교 학력 미만 성인인구는 74만명으로 전체의 9.7%로 집계된다.
이날 조희연 교육감은 격려사를 통해 "젊은 시절에는 자녀를 양육하시고 생활 전선에서 바쁘게 활동하시느라 학업을 계속할 엄두를 못 내시다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용기 내어 학교의 문을 두드린 만학도 여러분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드린다"며 "이러한 만학도 여러분의 열정이 현재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전해져 공부할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이어 최고령자인 졸업생 대표 윤신애(86)씨에게 학습에 적극 참여하고 학업 성취가 높은 학습자에게 수여되는 교육감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배움의 열정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만학도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마포 성인문해교실에서 공부한 손정애(76)씨는 처음 문해교실을 찾았을 때 72세였다. 집 근처에 성인 문해교실이 없어 지하철로 오가야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글을 처음 배우기 시작해 자음과 모음을 익히는 데 반년이 걸렸다"며 "배우고 잊으면 다시 공부하고 또 잊으면 다시 공부하기를 반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등교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일과 손자 돌보기 등으로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 처음에는 두세 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반 페이지가 넘는 글을 쓴다. 손씨는 "길가의 간판이라도 읽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첫발을 디딘지 어언 4년, 이제 어엿한 초등학력을 인정받는 졸업생이 됐다"며 기뻐했다.
졸업생 홍양순씨는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배워서 문해 교사 자격증을 딸 것"이라며 "나처럼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봉사를 하는 것이 인생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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