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전 회장의 52년 금융인생은 국내 금융업계의 전설로 통한다. 은행장 8년, 부회장 2년, 회장 9년 등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만 20년 가까이 머물렀다. 그는 상고 출신(선린상업고등학교)으로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이후 1991년 은행장에 선임된 뒤 부회장과 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하면서 신한금융을 국내 굴지의 리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2조811억원을 기록했다. 저금리 저성장 속에서도 전년 대비 9.6% 증가한 실적을 올리며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했다는 평가다.
신한금융은 신한사태라는 큰 위기를 겪었지만 라 전 회장에 이어 2011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는 한동우 회장과 임직원들이 힘을 합쳐 그룹의 위상을 지켜나가고 있다. 한 회장은 그룹의 옛 내분으로 생긴 붉은 낙인을 떼기 위해 그동안 조직을 추스리고 신한사태와 관련된 임원들까지도 감싸안으면서 5년을 달려왔다.
그러나 최근 한 회장에게 고민이 생겼다. 자신과 함께 그룹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성장을 이끌어왔던 중심축인 서진원 신한은행장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후임 행장을 뽑게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서 행장의 병세가 회복되고 있지만 당장 복귀가 어려운 상황에서 신한금융의 몇몇 임원들이 차기 행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문제는 행장 후보에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을 놓고 '누구의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신한사태 당시 라 전 회장, 이 전 행장측과 신 전 사장측이 갈등을 빚으면서 수많은 임직원들이 누구의 사람인가를 놓고 저울질을 당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한금융을 떠나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고 조직원들간의 상처도 남게 됐다.
서 행장의 임기는 다음달에 만료된다. 연임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이달 안에 열리는 자회사경영위원회(자경위)에서 차기 행장 후보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자경위 멤버는 한 회장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은행장 인사는 사실상 한 회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사람이 아니라 신한금융의 지속성장을 이끌 리더십과 기획추진력, 영업력 등을 갖춘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회장의 선택에 따라 신한사태의 주홍글씨는 완전히 사라질 수도, 좀비처럼 다시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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