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지난해 2월 출범한 가나문화재단이 새해 들어 20세기 초 근대미술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전시를 마련했다.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가나아트센터 지하1층부터 5층까지 열리고 있는 전시에는 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과 박수근 드로잉 작품, 근대 개화기 외국인들이 그려낸 한국의 풍물화 등 총 6개 주제로 구성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한국근대조각전▲근대한국화 4인전▲외국인이 본 근대풍물화전▲해외작가전▲박수근 드로잉전▲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전으로 이뤄져 있으며, 회화와 조각, 판화 등 총 560여 점이 나왔다.
'외국인이 본 근대 풍물화전'은 서양문물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인 20세기 초,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한국의 풍물을 판화로 담은 여섯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년)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마치 관광사진첩을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을 재현하고 있다. 아시아 원주민의 초상 작업으로 유명한 폴 자쿨레(Paul Jacoulet, 1896~1960년)는 화사한 색채와 윤곽선이 독특한 목판화로, 릴리안 메이 밀러(Lilian May Miller, 1895~1943년)는 일본 목판화 기법으로 조선의 모습을 그렸다. 윌리 세일러(Willy Selier, 1903년~?)의 동판화들은 사실적이고 치밀한 묘사로 생동감을 자아내는데, 특히 짜임새 있는 구성에 박진감있게 표현한 일상의 장면들이 흥미롭다. 버타 럼(Bertha Lum, 1896~1954년)은 여성 특유의 서정적이며 애상적인 분위기를 그림에 담았고, 요시다 히로시(吉田博, 1876~1950년)는 산악과 건물을 소재로 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가장 한국적인 국민 화가로 꼽히는 박수근(1914~1965년)의 드로잉 작품들도 한데 모여있다. 총 드로잉 35점은 1982년 서울미술관에서 첫 전시 후 30여 년 만에 공개되는 작품으로, 주된 주제는 그의 유화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장 사람들, 빨래터의 아낙네들, 아이를 업은 여인 등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의 모습이다. 투박한 질감과 색채로 담아낸 유화작품과는 달리,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구도 가운데 소박하지만 정확한 필선으로 그린 드로잉에서는 고단했던 삶 보다는 일상에 대한 간단명료한 고백이 느껴진다. '근대한국화 4인전'에서는 근대화단을 대표하는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년)과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년),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년)와 의제(毅齊) 허백련(1891~1977년)의 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전통화와 서양화가 공존하는 시대 더 이상 전통화법에 얽매이지 않은 독자적인 양식을 정립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거장은 한국 사회의 보편적 정서를 각자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로 승화시켰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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