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도 모르는 인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는 저 '인간'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자부했을 것이다. 저 인간이 구차해져 있을 때 도움도 많이 줬을 것이고, 저 인간이 슬플 때 격려도 했을 것이다. 저 인간에게 세상이 따뜻하고 삶이 의미있음을 일깨워 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간은 살 만해지마자 그의 뒤통수를 치고 그를 폄하했을 지 모른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모든 게 자기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라는 듯 은인을 업신여겼을 지도 모른다. 세상엔 그런 드라마들이 널려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런 마음이란, 인간 별종이 지니는 특이한 심성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저마다의 약점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분하고 서러웠으리라. 화장실에서 똥을 누며 앉아 그 분함과 서러움을 삭였으리라. 그러나 결코 똥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채 똬리를 튼 그 마음이, 마침내 볼펜을 들어 그 자를 고발하게 하였으리라. 저 느낌표를 찍는 마음을 생각한다. 저 기호 하나에 들어있는 경악과 모멸감과 그 뒤에 따라오는 번민과 불면을 생각한다. 저 낙서 하나가, 새삼 '독자'인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수식없는 마음'이 직핍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아, 돌아본다. 나 또한 어느 화장실 벽에, 저 느낌표 앞의 인간으로 찍혀 기소되어 있지 않은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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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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