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몇개월 전, 수많은 생명이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나서 세상의 모든 춤과 노래가 함께 멈췄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온통 나라 안이 슬픔에 잠겨 조문하느라 숨죽여 모든 위락을 죄악시하던 때가 엊그제다. 일부에서는 "노래와 춤을 멈추게 하면 힘 든 세상을 무엇이 위로할거냐"며 딴지를 거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8월 마지막 수요일인 27일 전국 도서관 등 1300여 곳에서 '문화의 날' 행사가 열렸다. 세종도서관 로비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성악가들의 모습.
오후 7시, 세종특별시 호수공원변, 국립세종도서관 로비는 발 디딜 틈 없었다. 가족 단위에서부터 청소년 무리,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개중에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행사장 뒷편에 둥글게 늘어서 있는 이들도 많았다. 현재 전국 공공도서관 50여곳에서는 '유쾌한 인문학'이 진행 중이다. 이에 세종도서관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과 '유쾌한 인문학-창조적 상상력 BOOK 돋우는 책 읽기' 강좌가 함께 열렸다.
문화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내 남녀 성악가 두사람이 펼치는 음악 공연에 빠져 들었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과 영화 '모정'의 삽입곡, '오페라의 유령' 등이 불려지자 드넓은 도서관 로비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남자 성악가는 해설을 곁들인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어 외화번역가이자 작가인 '이미도'씨(53)의 강연이 시작됐다. 이씨는 자칭 '상상력 전문가'다. 특히 외화번역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슈렉',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 500여편의 외화를 번역했다. '똑똑한 식스팩' 등 여러 권의 저술도 냈다. 이씨는 여러 영상과 사례를 통해 창조적 상상력의 중요성, 책 읽는 즐거움을 얘기했다. 참석자들과 문답을 주고 받거나, 맞장구를 유도하며 멋들어지게 강연을 펼쳤다. 이씨는 "손안의 사과는 누군가에게 건네지면 남는게 없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아지고 커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의 밀레니엄이 '세월호의 전(前)과 후(後)'로 나뉘어진 것처럼 세상은 '차벽 안과 밖'으로 나뉘어졌다. 차벽 안쪽에서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치유를 맛봤고, 위로를 받고 고통과 분노, 피로, 우울을 달래며 '성공적인 삶'을 얻으려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8월, '문화가 있는 날'의 풍경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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