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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시진핑 방한과 황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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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미국은 일본 경제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때 미국의 '공일(恐日)' '배일(排日)' 정서를 많은 영화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마이클 클레이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기업인수와 관련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노골적인 반일 감정을 드러낸 영화였다. 그것은 당시 일본기업의 미국기업 사냥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었다.

특히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던 건 잇따른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인수였다. 컬럼비아사를 일본의 소니가 사들여 충격을 주더니 이듬해엔 MCA가 마쓰시타에 넘어갔다. "미국의 혼이 팔렸다"는 당시 미 언론의 헤드라인에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가 엿보인다.
이 같은 반일무드의 뒷면엔 오랜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인들에겐 일본의 '경제침략'은 제2의 진주만 공격이었던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인에게 더 이상 '일본은 없다'.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은 이제 미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훨씬 더 강력하고 거대한 적, 중국이다. 새뮤얼 헌팅턴이라는 미국 학자는 '문명충돌론'에서 서양 문명을 몰락시킬 두 위험요소로 아랍의 종교와 함께 중국의 인구를 꼽았는데, 그 시각의 단순함과 선정성은 차치하더라도 거기엔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묻어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한 경계론. 이는 서구사회의 해묵은 논란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즉 '동양이 서양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황화론(黃禍論)이다. 칭기즈칸에 의해 유럽대륙이 잔인하게 짓밟힌 기억에서 비롯된 '황화'의 공포. 19세기 말 이래 100년간 일본에 덧씌워졌던 황화론의 혐의가 본래 황화론을 태동케 했던 그 '원조'를 찾아간 셈이다.

그러나 이 황화론은 사실 얼마나 몰염치한 엄살인가. 비서구 지역에 대한 서구의 수백년간의 침탈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황화가 아니라 오히려 '백화(白禍)'가 아니었던가.

중국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서구 일부 언론에선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 보내고 있다. 이런 경고에 담겨 있는 인식에서 황화론의 잔재가 읽히는 듯하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황화도 백화도 아닌 미ㆍ중의 공존, 동서의 균형이다. 한국 정부가 그 공존과 균형의 안목과 역량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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