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3000억짜리 기계. 3만6000㎞ 상공에서 운용되고 있는 통신 위성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신뢰할 만한 장치다. 그런데 이 위성들이 무엇인가에 의해 피습을 당하고 있다. 300여개의 지구 정지 궤도 위성 중 일 년에 약 7개 정도의 위성에서 심각한 수준의 오작동이 보고되고 있다. 어떤 위성은 다시 회복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영영 회복되지 않은 채 우주에서 영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고 용의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그럴듯하게 용의선상에 떠오르는 것이 고에너지 전자다. 태양풍으로부터 에너지를 전달받은 지구의 거대한 자기장은 수백만볼트의 전압으로 전자들을 가속시키는데 이 전자들이 위성의 전자 부품을 노리고 있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전자들은 위성 특정 부위에 쌓여 있다가 방전되면서 순식간에 전자 부품을 망가뜨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존재다. 이들이 의심을 받는 이유는 위성이 오작동을 일으킨 시간이 밤과 새벽 시간대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위성 고장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낮 시간보다는 밤 시간이 위성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3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고에너지 전자들이 밤 시간대에 지구의 안쪽으로 유입되므로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에너지가 낮지만 숫자가 많은 전자, 개수는 적지만 한 번의 충돌로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양성자. 이 중 어느 것이 무궁화 위성 5호를 고장 낸 진짜 범인일까. 우주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궁화 5호 위성에 우주 입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검출기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사건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일 터, 전체 위성 가격에 비하면 턱 없이 작을 입자 관측기 하나가 영구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특히 무궁화 위성 5호가 안보와 직결된 군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니, 동일한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은 가볍게 지나갈 일이 아닌 듯 싶다.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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