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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포럼]고장 난 채 돌고 있는 무궁화 위성 5호의 몇가지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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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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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늘 조용한 밤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예고 없는 혼란이 긴장감과 함께 위성 운영실의 문을 박차고 들이닥친다. 2009년 무궁화 위성 5호의 통신 두절을 경험한 위성 운용자는 또다시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이번에는 태양 전지판의 고장으로 위성 전력의 절반이 손실됐다. 다행히 위성 운용의 중단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언제 사고가 다시 터질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이렇게 지난해 6월 발생한 무궁화 위성 5호의 사고는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조마조마한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3000억짜리 기계. 3만6000㎞ 상공에서 운용되고 있는 통신 위성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신뢰할 만한 장치다. 그런데 이 위성들이 무엇인가에 의해 피습을 당하고 있다. 300여개의 지구 정지 궤도 위성 중 일 년에 약 7개 정도의 위성에서 심각한 수준의 오작동이 보고되고 있다. 어떤 위성은 다시 회복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영영 회복되지 않은 채 우주에서 영면을 맞이하게 된다.
우주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주 괴물? 아니면 외계인의 장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해 보지만 뭔가 단서를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사체(고장난 위성)를 인양해서 부검해 볼 수 없으니 사인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우주 공간에서 발생한 원인은 쉽게 찾을 수 없어 위성 운용자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용의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그럴듯하게 용의선상에 떠오르는 것이 고에너지 전자다. 태양풍으로부터 에너지를 전달받은 지구의 거대한 자기장은 수백만볼트의 전압으로 전자들을 가속시키는데 이 전자들이 위성의 전자 부품을 노리고 있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전자들은 위성 특정 부위에 쌓여 있다가 방전되면서 순식간에 전자 부품을 망가뜨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존재다. 이들이 의심을 받는 이유는 위성이 오작동을 일으킨 시간이 밤과 새벽 시간대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위성 고장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낮 시간보다는 밤 시간이 위성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3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고에너지 전자들이 밤 시간대에 지구의 안쪽으로 유입되므로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는 우리 은하 중심부에서 날아 온, 에너지가 매우 높은 양성자다. 이러한 양성자를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이라 부른다. 우주선은 10조볼트의 전압에서 가속된 입자와 맞먹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대의 가속 장치를 가진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CERN)에서 만들 수 있는 입자의 에너지보다 약 1000배 정도 높은 에너지다. 무시무시한 존재다. 이렇게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는 위성의 외벽을 쉽게 투과할 수 있으며 위성의 주요 부품과 충돌하면 심각한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가 낮지만 숫자가 많은 전자, 개수는 적지만 한 번의 충돌로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양성자. 이 중 어느 것이 무궁화 위성 5호를 고장 낸 진짜 범인일까. 우주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궁화 5호 위성에 우주 입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검출기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사건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일 터, 전체 위성 가격에 비하면 턱 없이 작을 입자 관측기 하나가 영구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특히 무궁화 위성 5호가 안보와 직결된 군 통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니, 동일한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은 가볍게 지나갈 일이 아닌 듯 싶다.





이재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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