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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시니코프 영면했지만 AK-47 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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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23일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날이다. 전세계 전장이나 테러 현장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총인 ‘AK-47’의 발명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타계한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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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향년 94세로 타계한 AK-47의 아버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23일 향년 94세로 타계한 AK-47의 아버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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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K-47은 옛 소련을 비롯해 55개국이 정식으로 채택해 발명 이후 1억정 이상이 생산돼 700여정이 생산된 미국의 M-16을 크게 앞선 소총이다. 이 때문에 M-16 소총의 개발자 인 미국의 유진 스토너를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AK-47을 만든 칼라시니코프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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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노보스티와 이타르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칼라슈니코프는 생애 대부분을 살아온 러시아 중부 우드무르티야 자치공화국 수도 이제프스크의 한 병원에서 지난달 17일부터 위장 출혈로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영면했다. 향년 9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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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대통령 공보비서 빅토르 출코프는 자기의 페이스북에 올린글에서 “오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탁월한 소총 설계사 칼라슈니코프가 힘든 투병끝에 94세로 숨졌다”는 애도의 글을 올렸다.

· 아들 빅토르는 지난달 칼라슈니코프의 입원에 대해 “아버지가 94회 생일 파티에서 무리를 한 뒤 건강이 나빠져 예방 차원에서 입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심심한 조의’를 표시했으며 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애도의 성명을 내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한 평생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헌신한 빛나는 본보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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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대까지 일한 칼라시니코프는 심장과 장기 질환을 앓아왔으며 지난달 17일 입원했다. 사인은 검시 후 발표된다. 조만간 유족들과 지방정부가 상의해 장례위원회가 조직된다.장례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 타계한 칼라니시니코프는 기계에 관한 한 천재였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칼라시니코프는 독학했다. 그는 이미 20대에 탁월한 설계 능력과 실적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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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하일 티모페예비치 칼라시니코는 1918년 11월10일 러시아의 알타이 지방에서 부유한 농부의 18명의 자매 중 1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요세프 스탈린이 집단화 선전을 펼 당시 토지를 몰수당했다.그 때 그의 나이 열 한 살이었다.그리고 온 가족은 서 시베리아로 추방됐다.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준비할 때 그는 징집돼 탱크 여단에 입대했다. 1938년이다. 붉은 군대에 소집됐고 설계기술이 뛰어난 그는 당시 소련 탱크연대의 장비를 개량하는 데 투입됐다.그의 공학 재능은 입대 후 진가를 발휘했다. 탱크 사거리 계산기와 시간측정기 등을 만들어 당시 적군(레드 아미)에 도입됐다.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1941년 독일이 러시아에 침공한 ‘바로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자 그는 탱크를 몰고 러시아 서부전선으로 달려갔다. 러시아 서부 브랸스크에서 독일군과 교전 중 폭발한 파편이 그의 어깨를 관통하면서 그는 후방으로 실려가야 했다. 그는 전장에서 수많은 병사들로부터 독일군 자동소총에 대응할 총을 만들 수 없느냐는 요청을 받고 AK-47을 구상했다.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설계하고 있는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상병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설계하고 있는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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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1년 카자흐스탄에서 요양할 때 철도 역 공장에서 시제품을 만들었다. 5년간 시험 끝에 1946년 발사시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부터 생산이 개시됐다. AK-47 은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이라기보다는 기존 소총에다 그가 수없이 많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더한 개량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는 러시아 소총은 물론, 영국과 이탈리아 소총까지 참고했다. 엔지니어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특히 많이 참조한 소총은 의외로 적군의 총이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전쟁에서 총탄을 휘날리던 자동소총 StG 44였다. 그는 유효사거리에서 정밀사격을 위해 이 총을 만들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거친 환경에서 근접 전투용으로 개발했다. 정확성보다는 다량의 총탄을 쏘아 적을 제압하는 총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AK-47이었다. 생산된 1947년과 자동, 그리고 칼라시니코프의 이름을 조합해 만든 명칭이다. 자체 무게 3.47kg,길이 880mm의 이 총은 7.62mm의 파괴력이 강한 총알을 분당 600발을 발사한다. 반면, 값은 아프리카에서 15달러에 팔릴 만큼 저렴하다. 모든 게 비싼 분쟁지역에서조차 최고가 1000달러(한화 약 105만9000원)이다.


견고한데다 제작과 조립, 조작이 간편할 뿐더러 진창이나 물속에 뒀다가 꺼내도 아무렇지 않게 작동해 아프리카와 중동,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전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러시아의 전략기술분석센터(CAST)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AK-47은 약 1억정이 생산돼 주요 라이벌로 약 700여정이 생산된 미국의 M-16을 앞선다.


옛 소련은 1949년 이 소총을 정식으로 채택했고 당시 30세이던 칼라시니코프는 상을 받았고 '러시아의 영웅','사회주의자노동의 영웅' 칭호를 동시에 받았다. 그는 수많은 훈장과 상을 받았지만 경제 보상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는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의 공방에서 90살이 되도록 일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명예로 먹고 산 셈이다.


칼라시니코프는 AK-47을 조국 수호를 위해 만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애국자였고 천재였다. 수없이 많은 테러리스트가 AK-47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어도 그는 악한은 아니었다. 칼라시니코프는 자기 발명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조국수호를 명예롭게 여긴 엔지니어였다. AK-47이 아무리 변형되더라도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 같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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