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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홍신선의 '마음경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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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모가 죽었다고/이른 새벽 전화가 왔다./수화기 내려놓고 내다본/베란다 창밖에는/6.25전쟁의 질퍽거리던 피 훔쳐내고//바닥 무늬 결도 윤나게 닦아놓은/육 칸 대청마루만한/하늘/샛별이 마지막 잠자리 막 개키고 떠난/날빛이나 잡생각 한 토막 묻지 않은/투명한 적막.//옥색 허리띠 허리에 동여맨/어떤 삶이/몸 바꾸어 떠 있다.

홍신선의 '마음경14'

■ 당고모(종고모)는 아버지의 4촌누이이고 촌수로는 5촌이다. 열촌까지 한 집에 살았다는, 조선시대라면 한 식구 중에서도 가까운 핏줄이고 추억이 한껏 드리워져 있을 어른이다. 시인이 어린 눈으로 엿본 당고모는,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으면서도 카랑카랑한 기개를 지켰던 천상 여인이다. 오래전 한 신문사에서 매일 쏟아지는 부음기사를 다시 재조명해 '삶의 기사'로 바꿔쓰자는 제안이 나와, 지면에 새로운 활기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른바 모든 죽음은 일생의 다채롭고 의미있는 추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역발상이었다. 시인은 당고모의 부음기사를 가장 인상적인 삶의 기사로 바꿔놓고 있다. 한국전쟁 때의 질척거리는 피와 당고모의 슬픔, 넓고 큰 집의 마루를 청소하느라 현기증 나던 때 문득 쳐다본 쪽하늘의 푸르름, 샛별이 뜬 시각에 임종하던 종고모의 생. 빛 하나도 생각 하나도 잡티가 없었던 그 생은 마치 마지막 잠자리 개놓고 떠난 것처럼 소슬하고 말끔했다. 그 생각을 하며 눈물이 나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니 떠가는 구름 하나, 허리춤에 하늘빛이 감돈다. 옥색허리띠를 매고 허허로이 떠오른, 영락없는 당고모다. 가슴까지 서글서글해지는 이 절창의 부음기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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