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작품들은 오늘날 예술적인 가치 혹은 개인적 사상을 표현하고 현실을 반영해 가는 것과는 달리 생존을 위한 미술품이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자손의 번성을 담은 마음들이 함축돼 있으며 집단성을 표출하고 있다. 본래 미술은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아주 오래된 시각 언어다.
사람들은 미술로부터 멀어지고, 미술이 삶을 떠나면서 소통의 도구라는 본래의 성격을 잃은 측면이 있다. 심한 경우 권력이나 자본과 결탁해 사회 구성원이 누려야할 소통, 교감을 고사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문화재가 때로 혐오시설로 둔갑한 개발 만능 시대에 미술은 더 이상 소통의 도구이기를 거부한다.
이런 형국에 공공미술가 이구영은 아주 독특한 존재다. 도시의 문화게릴라로 미술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작업으로 18여년을 바쳤다.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만난 사람들-아이들, 학생, 아주머니, 아저씨 등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고 나누고 이야기하며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해 왔다.
말하자면 이구영은 환경미술, 거리미술, 참여미술 등으로 불리는 공공미술을 생산, 기획하는 미술가다. 이처럼 미술의 사회적 책무를 위해 생산한 벽화와 공공미술작품이 200여점에 이른다. 주로 작업실 대신 거리, 전시실 대신 도심 공간으로 미술을 끌고 나와 소통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작품이 아니다.
지난 여름 당진의 일반 자원봉사자 1500여명과 함께 작업한 '당진 벽화예술거리' 작품은 총 3개 구간, 1km에 달한다. 시민들과 미술기획가가 만나 죽어있는 구도심에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재현시킨 사례는 공공미술의 새로운 전형으로 평가할만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일역 허브수 벽면작품, 당진벽화예술길, 대우테크노 큐브 벽화, 인디아나 존스-벽면요철 등 다양한 공공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도심에 새로운 문화경관을 부여하기 위한 공공미술은 삶의 공간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낡은 도심을 재생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도시의 회화적 커뮤니티 개발을 위한 지속가능한 모델을 제시해가는 이구영의 공공미술전은 우리 일상의 삶을 인문화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공공미술, 즉 미술의 민주적 정신이 더욱 뚜렷이 표출되는 형식과 기법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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