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의 '나의 모교' 중에서
■ 경주에 있는 세 개의 학교, 동방국민학교(아니 초등학교)와 신라중학교와 경주고등학교는, 자라지 않는 작은 나무처럼 거기 늘 서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키작은 철봉과 작은 측백나무 잎사귀들과 현기증 나는 하얀 운동장. '동방'에선 젊은 여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북천 바람이 거셌던 '신라'에선 황성공원의 숲냄새가 나고, '경주'에선 독일어 선생님의 축농증 있는 목소리와 먼데 교실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사물거린다. 김정환의 시를 읽으면서, 그 학교들이 모두 부교(父校)가 아니고 모교(母校)였음을 깨닫는다. 그 학교들도 어머니처럼 늙어갔으며, 가끔은 나를 기억하기도 하였겠지만 대개는 나를 잊고 끝없는 모성(母性)으로 다른 기억과 추억을 잉태해왔을 거라는 짐작을, 문득 해보게 된다. 내가 여태까지 늘 등 뒤에 있다고 생각했던 모교들은, 세상에는 없는 것이었으며, 그 모교들이 내게 가르쳐줬다고 믿었던 지혜들은, 어쩌면 어느 선생님도 언급하지 않은 모교의 공기같은 것을 호흡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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