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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명인의 '잠의 힘으로 가는 버스' 중에서

최종수정 2013.11.13 11:18 기사입력 2013.11.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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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자의 주인들은/왜 한결같이 반수(半睡) 속으로 빠져드는가/둘러보면 등받이 아래로는 가라앉지 않으려고/수면 위의 잠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다/옆 좌석 박선생은 아예 의자를 젖혀놓고/ 수심 속으로 파묻히는 고개/ 가까스로 걸쳐놓았다 통로 건너/ 이선생은 수족관 유리벽인 듯 이마로/연신 차창을 쪼아댄다 그 곁 김선생은 어제 저녁/술자리에서의 잔상 잠의 반숙으로 데쳐내는 듯/고개 꼿꼿이 세운 채 눈을 꼭 감고 있다/뒷자리 정선생은 미처 챙기지 못한 새벽밥/꿈속에서 먹고 있는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입맛 쩝쩝 다시네/(……)턱주가리로 흘러넘치는 코골이나 게걸스러운 침도/목적지까지 그날치의 자맥질을 옮겨놓는/가릉거리는 엔진 소리나 가솔린처럼 여겨지니/이 차는, 잠의 힘으로 가고 있다!

김명인의 '잠의 힘으로 가는 버스' 중에서

■ 모두가 졸고 있는 버스에서 홀로 깨어 그 형상을 핀셋으로 집어내고 비유 한 개씩을 엮어놓는, 시인의 익살과 해학은 문자의 즐거움의 정수를 보여준다. 자신을 찍어낸 문자영상들을 보고, 동료들은 머쓱해 하면서도 얼마나 낄낄거릴 것인가. 등받이 아래로는 가라앉지 않으려는 무의식이 잠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것을 통찰한 대목은 무섭다. 버스가 코골이나 침흘리기같은 잠의 힘으로 간다는 것은 시적인 유머에 가깝지만, 그 잠을 가능케 하는 버스 운전기사의 건재가 버스의 이성을 지키고 있게 하는 것이라면, 아주 상관없는 것도 아니다. 깨어있는 버스는 승객들이 꼭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 부등식 속에 반수(半睡)유령들의 풍경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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