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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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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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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언제 가?’
‘몰라.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어. 그쪽 사정도 있으니까.’
그리고나서 좀 있다가,
‘근데 넌 언제 와?’
하는 메시지가 이어 날아왔다.
‘나도 몰라. 곧 갈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나서 조금 있다가,
‘근데 너, 아직도 나 사랑해?’
하고 약간 장난기가 섞인 문자를 보냈다.
‘물론. 바보야!’

일초도 되지 않아 바로 답 문자가 날아왔다. 그것에도 역시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을 것이었다. 근데, 로 이어지는 장난기 섞인 문자 속에 흐르는 일말의 진심.... 그게 진짜 두 사람의 마음일 것이었다. 하림은 잠시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양,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동안 혜경이에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미장원을 처분하고, 은하를 자기 고모네에게 보내고....
정말 떠나려는 것일까.
‘근데 정말 언제쯤 와?’
다시 근데, 로 시작하는 혜경이 메시지가 떴다. 하림은 잠시 생각했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보따리 싸서 떠나면 그만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가 자기의 뒤통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무얼까. 소연이....?
그래. 혜경이에겐 미안했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라면 하나일지 몰랐다. 다음 주에는 온다니까 최소한 그녀의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할 것 같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떠나서 변변히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터였다. 돌아와 텅 빈 화실을 보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어쩌면 자기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예전에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영화 일 포스티노가 떠올랐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나버린 시인 네루다를 기다리는 청년 마리오. 끝내 그가 죽을 때까지 네루다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는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골짜기에 와서 겪은 일들의 조만간 다가올 결말에 대한 궁금증도 없지 않았다. 남경희에 의하면 곧 송사장이 참가하는 큰 경로잔치가 벌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 마을 전부가 모여드는 경로잔치라면 이장과 이층집 영감도 당연히 참여할 것이고, 거기서 송사장이랑 극적인 조우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쩐지 곧 폭풍우라도 밀려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마도 다음 주 지나서.....?’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이윽고 하림이 다소 모호하게 답글을 보냈다.
‘알았어! 기다릴게. 잘 마치고 와!’
아무것도 알 리 없는 혜경이 여전히 쾌활하게 대답했다.
핸드폰을 닫은 하림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무언지 모를 죄책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은행잎 떨어지던 가을날, 낡은 교정에서 만났던 혜경의 모습과 지난 겨울, 그녀와 보냈던 미장원 뒷방이 떠올랐다. 사랑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그때는 그녀가 그에게 전부였다. 그녀가 없으면 자기의 미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들 사이 빈 틈에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앉았다. 소연이란 새. 너무나 귀엽고 다정한 새.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가슴에 둥지를 튼 새.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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