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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명개척자 '혜초'...터키 이스탄불에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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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비단길, 초원길과 '동방해상로'를 건넜던 문명 개척자 혜초가 세계 문명의 집합소인 터키 이스탄불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6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마티스호텔에서 세계수도문화연구회와 경주대학교 지역발전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3 기념 '세계수도문화연구회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세계적인 실크로드 연구가들이 동서문명 교류 역사를 재조명했다. 비록 혜초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기는 하나 이날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아라비아어로 된 고대문서에 '신라가 세계의 끝'으로 간주된 것으로 밝혀져 실크로드 연구의 새 지평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 경우 경주는 세계 2대 문명 길인 초원길과 비단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게 확인된 셈이다. 따라서 '계림(신라)이 실크로드의 하늘 끝 북쪽'(왕오천축국전에 실린 시)이라는 혜초와 신라인의 세계관이 사실상 1300여년 만에 국제적인 공인된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리 레이 중국 상하이 화동사범대 역사학과 교수는 "아라비아어로 된 고대문서에서 '신라를 세계의 끝'으로 간주했으며, 유럽에서 중국을 통해 신라로 이어지는 육로와 초원길, 해상 무역로를 통한 실크로드는 모두 경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리 교수는 '중국 시안 문화의 역사고찰과 동서 실크로드 전망'이란 주제를 통해 신라 경주가 동서문명의 시ㆍ종착지임을 확인함에 따라 실크로드 연구가들의 후속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미카엘 테이커먼 이탈리아 로마 고고학연구소 박사는 '이탈리아 로마 고도 문화의 역사적 고찰과 동서 문화교류 조망'이란 주제에서 "5세기 초, 경주의 신라 왕족무덤에서 발견된 부장품 중 시리아 등지에서 생산된 유리그릇만 보아도 실크로드를 통해 동ㆍ서양의 교역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실크로드에 관한 고고학적인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혜초의 순례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볼 만하다. 혜초는 인류 문명 교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특히 신라의 고승인 혜초는 우리에게 있어 최초의 '세계인'으로 손꼽힐 만한 인물이다.

혜초(704~787년)는 열여섯 살 때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열아홉 나이에 중국 광저우를 출발, 파라사국(인도네시아)을 거쳐 천축(인도)으로 건너가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했다. 천축으로 가는 길은 바닷길이나 육로 모두 험난했다. 당시 여러 문헌에는 중도 탈락자, 사망자가 속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 "천축의 머나먼 길 만첩산인데, 가련하구나. 힘써 올라가는 유사들이여. 몇 번이나 저 달은 외로운 배를 보냈는가. 한 사람도 구름 따라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혜초 전후로 수많은 신라 유학승이 천축행에 도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혜초를 제외하고 귀환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없다.

혜초는 석가모니 성지를 순례한 스무 살부터 4년 동안 다섯 천축국과 서역을 더 여행한다. 사실 이는 여행보다는 귀환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다. 혜초가 지나간 나라는 다섯 천축국을 비롯해 이란, 이라크, 시리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동로마제국 등 40여개 나라다.

인도~러시아~중국 장안에 이르는 귀환 길은 총 1만5000여㎞다. 비단길, 초원길과도 연결되며 눈 덮힌 파미르고원, 타클라마칸과 고비 시막, 천산 산맥 등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공간과도 만난다. 추위와 굶주림, 호랑이나 늑대같은 맹수들, 끝없는 평원, 거친 산맥을 넘는 것은 오늘날에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혜초에게는 지도도 나침반도 없었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상상할 수도 없다. 오로지 정신만으로 길을 찾아야 하는 여정이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뜬 구름만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 편에 보내려 하나/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 돌아보지도 않네/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나를 위해 소식 전하리."

혜초가 쓴 시다. 운율과 정조가 완벽할 만큼 시적 완성도가 높다. 혜초가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다고 적은 데서도 알 수 있듯 당시 신라인의 세계관이 신라 경주가 동서문명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우리나라 끝단은 동서문명과 이어져 있고, 신라의 유학승들이 중국과 인도행을 도전하게끔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어 박병룡 박사(전 국립부여박물관장)는 "신라 무덤에서 나온 유리그릇과 무덤을 지키는 일부 석상 가운데 유럽인의 형상은 경주에 서양인들이 일부 살았고, 동서양 교류를 했다는 흔적"이라고 문명 교류의 실체를 세계 역사학계에 알렸다.

오래 전부터 여러 경로로 로마 및 아랍문명이 신라에 도달했고, 또한 신라문명이 서역으로 전해졌다는 사료와 증거는 수두룩하다. 혜초가 초원길의 일부와 비단길, 동방해상로 등을 이용해 인도 등을 다녀온 것도 이미 신라인이 경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혜초의 고행, 순례는 세계문명사적으로 가장 희대의 사건이다. 혜초는 홀로 수만리를 걸어서 여러 인류 문명과 조우, 국경과 사상, 인간, 종교의 경계를 넘었다. 그리곤 기행을 객관적인 필체로 담담히 그려내 오늘에까지 전한다.

혜초의 대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오늘날 '동방견문록', '이븐바투타 여행기', '동유기' 등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불린다. 1908년 2월. 프랑스의 젊은 동양학자 폴 펠리오(1862~1943년)가 중국 신장성 둔황 석굴에서 책 제목도, 저자 이름도 알 수 없는 두루마리 형태의 필사본 한 권을 발견, 파리로 가져간다. 파리로 귀환한 폴은 신라 승려 혜초가 지은 여행기로 확신한다.

이를 1938년 독일의 동양학자 발터 폭스(1902~1979년)가 번역하면서 비로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세상에 드러난다. 발터는 "인도, 아프가니스탄, 동로마제국 및 러시아 일대를 순례한 혜초는 마르코 폴로에 500년 앞서 비단길을 개척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혜초의 순례길은 역사상 유례가 없다.

전기에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방향, 머문 지역의 지배자와 언어, 관습, 풍토, 왕이 소유한 코끼리, 종교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즉 혜초는 동서양 문명의 기록, 전달자로 인류문명 교류사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개척자다.

실로 혜초는 승려이기에 앞서 대여행가이자 인류 문명탐험가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혜초는 마르코 폴로 등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에게는 동행할 지원부대, 낙타가 있었지만 혜초는 누구의 조력도 받지 않고 혼자서 탐험과 고행을 했기 때문이다.

열아홉 혜초가 여행한 중국~인도네시아~인도에 이르는 뱃길은 훗날 중국 명나라 정화의 원정대가 이동한 동방해상로가 된다. 혜초는 동서양 문명의 대 이동로인 동양 해상로인 '정화의 항로'와 '비단길', '초원길'을 동시에 건넌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평가할 만하다.

여행하는 동안 혜초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일관되게 걸어 나갔다. 또한 말이 통하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모두를 만나 대화하며 세상을 기록해 나갔다.

여러 학자들은 혜초가 먼 길을 우회한 데는 당시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을 선택한 때문으로 추정한다. 우선 혜초가 상정할 수 있는 길이 대체로 네 갈래다. 첫 번째는 애초에 서역으로 갔던 해상길이다. 그러나 풍랑과 당시의 항해술로는 다시 살아서 귀환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계절풍이 있어야 한다.

해상길 이동 시 혜초가 일 년간 인도네시아에 머물렀던 이유도 열대 기후 적응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도로 갈 수 있는 계절풍을 다시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거꾸로 귀환할 때는 계절풍은커녕 태풍이라도 만날 것으로 우려했을 수도 있다.

둘째, 방글라데시를 거쳐 태국 등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나는 남방을 돌아오는 방법이다. 그러나 당시는 길이 열려 있지 않았다. 열대 우림을 지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 번째는 고준 영봉이 즐비한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타클라마칸 사막 한복판을 건너는 길이다. 도상 거리로는 가장 가깝다. 7000여m나 되는 산맥을 넘는다 해도 그 다음부터는 만년설 지대인 파미르 고원과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동서 1000㎞, 남북 400㎞다. 그러나 사막 한복판은 섭씨 50도가 넘는 폭염이 도사린다.

맨 마지막 이동로는 인도 서쪽의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비단길~초원길을 찾아가는 루트를 상정할 수 있다. 이미 비단길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중동, 로마제국까지 연결돼 물자와 문명이 흘렀으며 폐쇄와 개방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초원길은 우리 민족이 유라시아대륙을 건너 동방에 이른 길이므로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다.

어느 길로 찾더라도 서쪽으로 이동해 북방으로 향하기만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비록 길게 우회하는 길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물론 히말라야 산맥이나 파미르 고원, 고비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전에 사람과 문명이 흐르는 흔적이라도 찾아가면서 이동할 수 있다면 생존 확률이 있었고, 혜초는 그 길을 열어낸 것이다.

오늘날에도 비단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전직 기자다. 그는 30여년간 '르 피가로' 등에서 정치부 기자, 사회ㆍ경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은퇴 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4년 동안 1만2000㎞라는 거리를 걸었다. 그러나 혜초와는 달리 겨울에는 파리로 돌아갔다가 날씨가 풀리면 다시 걷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베르나르가 여러 사람에게 숱한 영감을 주고는 있지만 혜초에 비견할 수는 없다. 위대한 문명 개척자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다시금 이뤄져야 할 상황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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