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갓'을 떠올리라면 의관 정제를 중시한 조선조 선비들이 썼던 '흑립(黑笠, 검게 옻칠을 한 갓)'의 모습이 그려진다. 갓 중에서 최고로 꼽는 것은 단연 '통영 갓'이다. 특히 통영 갓이 유래된 계기를 보면 더욱 흥미롭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과 관계가 깊다. 장군은 전쟁에 대비하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할 지역 민초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12공방'을 짓고 수공예품 발달을 장려했다. 그때부터 '12공방'은 조선 최고의 전통공예 산실이었다. 흥선대원군이 통영까지 사람을 보내 갓을 맞출 만큼 통영갓은 '갓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고종황제 국상에는 모든 백성이 흰 갓을 통영에서 맞춰 썼다고 한다.
갓 하나 만드는 데에는 세 가지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 각 공정당 필요한 과정도 많아 총 51개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갓이 만들어진다. 세 가지 공정은 가느다란 대나무 실로 갓의 테두리를 만드는 '양태일', 말꼬리 털인 말총으로 총모자(위쪽 방향으로 튀어오른 갓의 가운데 부분)를 만드는 '총모자일', 그리고 양태와 총모자를 이어붙이고, 먹이나 옻으로 칠하는 등의 '입자일'로 구성되는데, 대나무나 말총에서 실을 뽑아내고 갓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하나하나 실을 꼬아 잇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시간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정씨는 이십대 초반부터는 대구로 옮겨 제1세대 통영 갓 보유자들인 김봉주(입자장), 고재구(총모자장) 선생 밑에서 배우고 일했다. 지독한 집념으로 청년시절엔 하루 15시간 이상을 갓 만드는 일만 했다고 한다. 통영 갓을 왜 대구에서 배웠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1960년대 이후로는 갓의 수요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발달한 인근 도시인 대구에 모든 공방과 가게가 모여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는 양태장인인 소문도 선생에게도 사사해 통영 갓의 모든 기술을 갖췄다. 스승들이 다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그는 통영 출신이 아닌 이유로 통영에서 갓을 잇기가 쉽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동안 전시 경력등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타 종목 장인들과 교류하며 통영 갓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는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4호 갓일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최근 통영에선 그를 찾는 문의가 빗발친다. 통영시는 조선 '통제영' 복원을 앞두고 있으며, 12공방도 곧 문을 연다. 정씨는 "현재 통영 갓 전통 기술을 나와 아내, 아들이 이어가고 있지만 통영에 내려가 제자를 길러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소망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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