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명의 차명계좌 960개·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19개 동원
936억 횡령, 546억 조세포탈, 569억 배임
CJ그룹은 삼성에서 떨어져 나올 무렵부터 임직원 차명계좌 960개, 해외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19곳을 동원해 국내·외 모두 6200억원 규모 비자금을 조성·운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이재현 CJ그룹 회장(53)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서울 중구 장충동 이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지 50일만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CJ그룹 임직원과 짜고 수천억원대 국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관리하는 과정에서 546억원의 조세를 포탈하고, 936억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 자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또 개인 부동산을 구입하며 해외법인에 569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도 받고 있다.
또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CJ프레시웨이, CJ International Asia 주식을 사들여 각각 5억 2000만원, 1000만 달러를 배당받고도 41억 3000여만원 규모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 결과 이 회장은 조세피난처에 모두 1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홍콩, 싱가포르 등 외국 금융기관 7곳에 차명계좌를 열어두고 외국인이나 외국법인이 주식을 거래하는 것처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CJ그룹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운용을 위해 관리해 온 차명계좌 규모는 960개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CJ그룹 임직원 459명 명의 636개 차명계좌를 동원해 CJ 주식을 사고팔며 1182억원을 벌어들이고도 238억원대 조세를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해 1998년부터 올해까지 회의비, 조사연구비, 복리후생비, 급여 등의 명목으로 회계장부를 꾸며내 국내외 법인자금 844억여원을 빼돌린 뒤 이를 주식거래 및 가족 생활비와 미술품·와인 구입 등에 사용한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1998년부터 국내·외 법인 자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 정황을 확인했지만 2002년 이전 범죄는 공소시효(10년)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관재팀의 실체도 주목 대상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차명재산 관리업무 이른바 ‘관재업무’를 맡기기 위해 회장실 내 재무2팀 조직을 만들고, 홍콩과 미국법인에도 이를 전담할 직원을 뒀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회장의 범행을 도운 CJ 재무담당 부사장 성모씨 등 임원 3명을 불구속 상태로 함께 재판에 넘기고, 앞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금고지기’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대표(57·부사장)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했다.
중국에서 종적을 감춘 재무팀장 출신 CJ중국법인 임원 김모(51)씨는 지명수배 후 기소중지하고, 국세청에 포탈세액을 추징하도록 관련 자료를 통보했다.
한편 검찰은 아직 국내외 관련 기관을 통해 공조를 요청한 CJ그룹의 해외 차명계좌 내역을 모두 확보하지 못한 만큼 이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실명제법 제정 이래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기업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범죄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제재가 미온적인 것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며 “외국과 마찬가지로 차명계좌 개설·관리에 협조해준 금융기관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신설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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