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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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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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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부대 노래.
아버지가 술에 취해 그 노래를 부르실 때면 기어이 반쯤은 울음이 되시곤 했다. 하림이 얼굴도 보지 못했던 죽은 삼촌 때문이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삼촌은 이마가 훤했고, 웃을 때면 덧니가 드러나곤 했다고 했다. 삼촌 역시 맹호부대 포병으로 월남에 갔다가 한줌의 유골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한동안 하림의 집엔 햇빛 이글거리는 정글을 배경으로 서서 웃고 있는 육군 일병 군복을 입은 삼촌의 낡은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죽은 동생이 떠오르면 바로 그 맹호부대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그래서 하림이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던 노래가사였던 것이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가셨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나암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 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 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그런 노래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부르시던, 단조풍의 그 노래를 들으면 하림 역시 가슴이 싸아하게 젖어오곤 했다. 그땐 소풍 가는 초등학생들도 모두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이층집 여자 남경희로부터 듣게 될 줄은 뜻밖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이층집 영감이 바로 그 부대 출신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보면 한 세대는 그들 세대만이 지닌 공통된 요소가 생각보다 훨씬 많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 간의 튼튼한 유대감도 바로 그런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고, 같은 시기에 군대를 가고, 같은 시기에 예비군 훈련을 받은 세대들은 그들만이 아는 노래가 있고, 그들만이 아는 암구호가 있어 그들끼리 은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그리하여 그들만의 하나의 굳건한 멤버십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대감은 때때로 이념이나 정당한 판단까지도 넘어서는 법이다.

지하철에서 어떤 노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요즘 젊은 것들은 도무지 버릇이 없어! 지들이 뭘 안다구 그래?”
그러면 지하철에 함께 타고 있던 그 노인과 같은 동연배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노인과 같은 판단을 하고 동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대간의 질긴 유대감 때문이다. 이 세대간의 굳건한 유대감은 때때로 독선과 아집을 낳고, 세대간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개똥철학자 똥철이 ‘원숭이 얼굴’ 이라고 흥분해서 떠들던 바로 그 늙은 세대 역시 그런 공통된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아버진 하사관이셨어요. 하사로 갔다 상사로 전역을 하셨죠.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때 우리나라 군인들도 많이 죽었다고 해요. 아버진 정말 그 노래 가사처럼 자랑스러워 하셨죠. 자부심도 대단하셨구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모두 자신들이 그렇게 피 흘려 싸운 덕분이라고 하셨죠. 경부고속도로가 모두 그분들의 피값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하림이 쓸모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남경희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서 아버진 죽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모든 걸 책임져 주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죠. 미국에선 그런 사람들 국가에서 평생 돌봐준다고 하시면서요. 그땐 고엽제가 그렇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비행기가 뿌리고 가는 걸, 뒤따라가며 샤워라도 하듯이 맞고는 했다고 해요. 아버지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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