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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골편지]돈과 멀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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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내 이웃 중에 돈자랑하느라 입에 거품 물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몸짱'이다. 몸짱은 근육질 몸매에 탄탄한 체구를 자랑한다. 오후 해질 무렵, 땀 흘리며 잣나무골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일상의 한 풍경처럼 비춰질 정도다. 몸짱은 너무 젊어 보여 열살 차이인 나를 무색케 한다. 그런 몸짱은 항상 돈이 많다고 으시대기 일쑤다. 몸짱의 아내도 돈 앞에서는 절대 겸손한 적이 없다.

사실 잣나무골에서 누구든 돈 자랑할만 처지는 못 된다. 이웃 중에는 차관급 행정가, 국영은행 부행장보를 지낸 금융인, 엔지니어링 회사 대표, 공익단체 이사장, 변호사 등으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야말로 이곳에서 돈 자랑은 스스로 천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헌데도 몸짱의 돈 자랑은 취미생활처럼 보여진다. '돈 자랑하면 존경이라도 표시할 줄 아는가 ?' 아니꼽지만 처음엔 애써 부러운 표정을 몇번 쏟아줬다. '인생 참 !! 별 거 다 협찬하며 사는구나. 적선하는 걸로 치자. 참 ! 피곤한 이웃이네.' 슬슬 싫증 난다. 한편으로는 '내가 참 없어 보였던가'하는 자조도 있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건가 ? 또 몸짱이 슬슬 다가온다. 어느 때는 소리없이 다가와 나를 놀래키기도 한다. 대화는 일상적인 것으로 흐르다가도 돈 얘기로 끝난다. 우리 집 마당에 잔디를 깔아야한다거나 집을 잘 가꿔야 값이 더 나간다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일일이 다 상대할 수도 없고 답답해 죽을 노릇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 간혹 못 들은 척도 하고, 일부러 불편한 표정을 지어본 들 허사다. 취미생활이란 게 주변에서 말린다고 될 노릇인가. 하여간 오지랖과 참견, 간섭, 과도한 접촉, 돈 자랑까지 신경 쓰여 마당에도 쉽게 나서기 어려울 판국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시간에 몸짱의 집을 찾았다. 마침 TV를 보던 몸짱이 반색한다. 몸짱의 아내가 차와 과일, 술을 내온다. 이후 일상사와 세상 얘기가 한참을 오갔다. 막 일어나야할 시간이라고 생각될 무렵 나는 한껏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돈 좀 3000만원만 빌려주실래요 ? 하도 다급해서요.이자는 충분히 드릴게요. 갚으려면 한 석달 정도 걸릴 것 같구요."

'아 ! 몸짱의 넋 나간 표정이라니...' 몸짱 그대로 얼어붙었다. 천천히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어려우시면 1000만원이라도..." 몸짱의 아내도 넋이 빠졌다.. 그리곤 서둘러 일어났다. 그 뒤로 몸짱은 내게 다가오는 일이 없다. 설령 멀리서 보이기라도 할라치면 쏜살같이 집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제 몸짱의 돈자랑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몸짱에게는 내가 참 이상한 이웃일게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을 빌려 달라니 더이상 상종하지 말아야지' 했을 게 틀림 없다.'돈을 많이 벌려면 돈 많은 사람과 사귀라'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돈 많은 사람을 물리쳤으니 돈이 또 멀어진 셈이다.' 게다가 교활한 방법까지...' 이제 돈하고는 인연이 더 멀어진 듯 하다.

벗들...돈 많은 이웃 때문에 불편해 지거든 한번 써먹어보시라.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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