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책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원로 사서'지만 워낙 젊어 보여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걸 무색케 하는 얼굴이다. '사서계의 싸움꾼'으로 알려진 것과는 인상이 전혀 딴판이다. 그런 정 회장은 요즘 한가할 여력이 없다. 최근 국립세종도서관 책임운영기관 지정 반대 투쟁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어서다. 그에겐 이번 싸움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의 데자뷰인 셈이다.
사서단체가 결성되지 않아 변변한 싸움을 할 수 없었던 때다. 결국 조례안은 여러 차례 유보를 거듭하고서야 폐기됐다. 그 싸움으로 서울시립도서관은 현재의 운영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광역시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서울시의 행보에 따라 조례 제정을 추진 중여서 국공립 도서관 운영체제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에 정 회장은 "서울에서 무너질 경우 전국 도서관 운영체계는 급격히 민간 위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를 계기로 정 회장은 전국적인 사서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역 단위의 개별적인 연구 모임, 친목 모임 및 각 사서들을 모아 2010년 한국 사서총연합회를 결성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 공식 인가를 받음으로써 한국사서협회는 명실상부한 도서관 관련 단체로 자리잡게 됐다. 정 회장은 연합회 당시부터 지금껏 회장으로 협회를 이끌고 있다.
정 회장은 "이번 싸움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며 "정부가 도서관 운영을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정 회장은 "원안을 무시하고 몇사람이 모여 앉아 그 흔한 공청회 등 토론 및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법을 바꾸겠다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도 알 수 있 듯 도서관 정책이 졸속과 탁상행정이 비일비재하다고 개탄한다.
정회장이 지적한 도서관 운영의 후진성은 일일이 손을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당장 사서교사를 배치하도록 한 학교도서관만 해도 대다수 비정규직 사서로 채워져 현장마다 고용 불안, 저임금에 시달린다. 전문성을 키울 수가 없다. 각 지자체 공립도서관의 경우도 "도서관장을 사서로 임명한다"는 도서관법을 회피하기 위해 '평생 학습관', '교육문화관' 등으로 명칭을 바꿔 달고는 일반 행정직으로 채우고 있다. 모두 도서관 행정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정 회장은 얼마남지 않은 공직 생활동안 도서관 개혁에 온 힘을 경주할 생각이다. 우선 사서협회의 조직을 보강해 명실상부한 도서관 단체로의 위상을 강고하게 세우는 게 급선무다. 이에 정 회장은 "도서관 현장 문제 및 도서관 정책 연구 등 전 도서관을 사서중심 도서관으로 개편해야 도서관이 제대로 된 대 국민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마지막 공직생활동안 후진적 도서관 개혁에 온 힘을 바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사서는 책이나 꽂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며 도서관 또한 낡은 유물과 폐기된 정신의 쓰레기장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도서관장을 '사서'라 칭할 정도로 존경받는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고 전문적인 식견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는 "이제 도서관 운영을 포기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기를 바란다. 국민은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는 온 국민이 함께 지켜야 하는 권리다."고 강조했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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