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마디 거룩한 '말씀'으로 치유될 몸과 마음이었다면 분노와 화와 우울의 거대한 성곽이 날마다 더 높이 쌓여질 리가 없을 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화'는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두들 아프다고 아우성치지만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치료해야하는지, 또 아픔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내 탓인지, 세상 탓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최근 몇년간 치유담론의 파도를 타고 수많은 상품들이 아픈 이들을 위무하겠다고 요란법석이다.
아픈 사람들은 목마름을 달래줄 한 줌의 물도 되지 못 하고, 상처에 바를 빨간 약도 되지 않는 힐링상품들, 그 '위로의 당의정'을 구하느라 혈안이다.
최남수의 포토힐링에세이 '그래도 뚜벅뚜벅'도 수많은 위로의 메시지가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픔에 대한 체험의 공유가 충분히 이뤄졌는 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1년여동안 한강의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돌아보며 4계절의 풍취를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사진 위에 사색과 성찰의 빛깔을 입혔다. '뚜벅뚜벅' 결코 서두르지 않고. 다른 이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한순간에 이루겠다는 욕심도 없이 사진을 통해 비친 세상, 즉 마음의 창으로 본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가르치겠다거나, 네가 아픈 것은 이 것 때문이라는 등의 '지적질'로 다시 도리질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강변의 도시와 그 위에 뜨고 지는 태양, 매일매일의 일상에 비춰지는 가로등, 남산 전망대 옆을 나르는 철새, 다리 위를 수놓은 흰 구름 등등 우리가 늘 만나는 일상의 사물에 설레임, 변화를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채운다. 여기서 사진찍기는 흔들거리는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런 일상 찾기를 '생계형 깨달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팽팽한 밀고 당김이 현실에서 괴뇌하고 아파하다 일어서는 굴곡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실제의 삶, 그 발걸음이 숙성되면서 약하고 가느다랗지만 진액처럼 나오는 '생계형 깨달음'의 소리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뚜벅뚜벅'/최남수 지음/에이원 북스 출간/값 1만8000원>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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