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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정부청사 더위와 창조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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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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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력 절감 대책들이 쏟아지는 요즘, 그러나 근본적인 처방이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더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작렬하는 태양의 기세에 있으니 그에 맞춰 대책을 짜야 할 텐데 그런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해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일단 해와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해에 정중히 '자중'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해가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것은 이미 우리 역사에서 증명돼 있다. 통일신라 때 해가 둘 나타나서 없어지지 않자 월명사가 노래를 지어 부르니 하나가 곧 사라졌다(도솔가)고 하니 진심으로 설득하고 대화하면 들어주는 아량과 양식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만약 그렇게 얘기해도 안 통하면 좀 더 강력하게 나가야 한다. 해를 상대로 경제적 사회적 피해에 대한 행정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봉쇄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큰 보자기를 만들어 태양을 덮어씌우거나 한반도 전체를 뒤덮는 큰 우산을 만들어 차양막으로 쓰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더위를 막을 뿐만 아니라 침체에 빠진 섬유업 등을 살리는 등 경기부양 효과도 거둘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물론 쉽지 않은 공사이겠지만 이미 4대강 사업으로 대역사의 위업을 이룬 바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더위를 식히려고 냉랭한 농담을 하느냐고? 물론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이 대책의 '초현실성'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공공기관의 전력 절감 대책이 갖고 있는 비현실성-그걸 넘어선 반(反)현실성-과는 몰현실성에서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부 청사의 냉방 가동이 중단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내게는 일종의 농담과도 같다. 요즘 정부 부처실에서는 한낮에 더위로 후끈거리는 사무실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고, "대낮에는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말도 나돈다고 한다. 심지어 더위를 심하게 타는 것으로 알려진 한 부처 장관이 최근 외부 일정이 많이 늘어난 걸 두고 "후덥지근한 장관실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돈다고 하니, 이 정도면 희극적인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전력난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는 좋다. 고통분담을 하려는 그 마음가짐도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실내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 사무실에서 꿋꿋이 공무를 수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비상한 인내력과 극기심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온 우수한 공무원들이라고 해서 매년 여름마다 '초인'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는 초인이 아닌 '정상적인' 공무원들이, 정상적인 여건에서, 정상적으로 일하며, 정상적으로 성과를 내는 걸 보고 싶다.
지금의 절전 대책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전통', 특히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형성해 온 확고한 전통의 재연을 본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지극히 간단하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풀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획일성이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리한 결과를 빚지 않는 경우도 거의 없다. 각 사무실의 형편과 여건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 없이 28도라는 숫자로 확고부동한 기준을 제시했을 때, 그 해법은 참으로 간단명료해 보이지만 세상에 간단한 해법이 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국민들이 세금을 들여 공무원들에게 급여를 주고 헌법으로 신분을 보장하는 데에는 그 만큼 어떤 문제에 대해 '간단히'가 아닌 심사숙고하고 다각적으로 고민할 것을, 그래서 합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사실 이 점에 '공(公)'의 진정한 역할이 있으며 정상적인 '밥값'을 하는 것이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어느 시인은 선언했지만 지금의 희극적인 풍경이 전통이 되기 전에 좀 더 '창조적'이 되자. 창조경제 시대에 창조의 빈곤, 상상력의 빈곤, 공(公)의 빈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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