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라면상무, 빵 회장, 조폭우유로 발단된 갑을(甲乙) 관계 논란이 2013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곪디 곪았던 잘못된 갑을 관계 폭로는 양수가 터지듯 봇물을 이뤘고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갑과 을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 상호 존중해야 하는 이들의 관계는 상하(上下) 또는 주종(主從)관계로만 변질돼 있었다.
상황이 이렇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본사와 대리점, 임대인과 임차인, 고용주와 고용인 등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해관계 집단 중 소위 갑으로 꼽히는 이들은 좌불안석이다. 자칫 인터넷이나 언론지상에 잘못된 사례라도 하나 나올 경우 그 동안의 기여도(?)와는 관계없이 '상종하지 못할' 존재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동반위는 외식대기업, 중소기업 등과 10여 차례 넘게 공식회의를 거치며 논의를 해왔다. 어느 정도 진전도 있어 보였다. 이 와중에 갑을 논란이 터졌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역세권 반경 100m를 벗어나서는 새로운 매장을 낼 수 없다'라는 가장 강한 규제로 바뀌었다. 간극을 좁히려 4개월 간 이해 당사자들이 나눴던 과정은 '없었던 일'이 됐다.
갑을 논란 이후 대기업 옥죄는 분위기에 편승돼 결론이 바뀐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갑'인 대기업의 외식확대만 막으면 '을'인 골목 음식점들이 많은 혜택을 누릴 것이란 발상이다. 정작 신규 출점이 사실상 힘들어진 대기업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자칫 '상종하지 못할' 존재로 말이 나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동반위의 무리수가 30일 예정된 외식업중앙회장 선거와 연관돼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외식업중앙회장은 정치권에서 자영업계를 대표하는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중요한 자리다. 선거를 의식해 강경 입장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규제의 목적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함이다. 본사의 부당한 횡포나 불공정거래 행위, 먹고 튀는 식의 갑의 행태는 마땅히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형평성을 상실한 규제는 존립근거부터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뻔히 나올 부작용을 알면서도 시행하는 것은 독(獨)이 될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한 국민 대통합과 동반성장이 시장경제에 역행한 규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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