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남아시아에는 AKR코포린 처럼 처음으로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과거에는 채권시장에서 돈을 빌릴 엄두도 못 냈던 작은 기업들이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을 탈출한 유동성이 동남아시아 채권시장으로 몰리면서 자금을 빌리는 것이 쉬워졌다.
시장조사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초 이후 발행된 아시아 지역 통화 채권 가운데 18%는 과거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본 경험이 없는 기업들의 것이었다. 규모는 1247억달러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에서 첫 채권시장 참여자의 채권발행액이 각각 70억달러, 295억달러에 불과하고 그 비율이 전체 발행액의 3%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남아시아 지역에 채권 발행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게 해준다.
동남아시아 채권 시장에서는 고위험군 기업들이라도 싼 이자에 담보없이 긴 기간 동안 미국과 유럽의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다. 빠른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서방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반영하지만 유동성의 방향이 갑자기 전환된다면 자산 버블 붕괴 위험성 또한 높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도네시아에서 발행한 자국통화 국채의 30%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2008년 대비 2배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자국통화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율이 50%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각각 40%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지난 3월 동남아시아 지역 채권 시장에 불고 있는 열기를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은행은 "동남아시아 각국 정부는 최근 이 지역으로 외국인 자금이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경제가 살아날 경우 유동성이 빠져나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도 아시아 지역의 자산 버블을 경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채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 회복이 뚜렷해질 경우 해외에서 동남아시아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자금의 절반 가량이 다시 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1990년대 후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외환위기는 재발할 위험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유동성의 유출로 동남아시아 자국 통화의 가치는 하방 압력을 받겠지만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많은 채무자들이 달러 표시 채권이 아닌 자국 통화 표시 채권을 통해 빚을 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선미 기자 psm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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