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는 살 수 없다. 간혹 혼자 모든 걸 해결하며 사는 사람은 있지만, 그들 역시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은 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기가 더욱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수록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자 한다. 그게 누구든 나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니까.
영화 '콘돌은 날아간다'의 박신부(조재현) 역시 그런 인간의 본성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오로지 신에 의탁해 신을 섬기며 살 운명을 택한 그였지만, 나약함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토록 아끼던 연미(유연미)의 죽음은 그를 극복할 수 없는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같은 상처를 지닌 연미의 언니 수현(배정화)과 함께 서로의 아픔을 보듬었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며 얻은 쾌락은 잠시나마 아픔을 잊게 만드는 진통제였다.
박신부를 연기한 조재현의 연기는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내면연기의 교과서라고 하면 맞을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보여주는 슬픔은 겉으로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억지로 캐릭터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지만, 박신부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영화에 데뷔한 배정화는 신인답지 않는 연기력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신인 여배우가 감당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는 파격적인 정사신도 덤덤하게 소화해냈다. 동생을 잃은 슬픔의 감정을 러닝타임 내내 유지한다. 정말 배정화가 영화 첫 출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콘돌은 날아간다'가 또 한 명의 충무로 기대주를 배출했다고 감히 한 마디 하고 싶다.
장영준 기자 sta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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