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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3장 화실이 있는 풍경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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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3장 화실이 있는 풍경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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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왼쪽 작은 길을 따라 쭈욱 가면 ‘돼지가 고추장에 빠졌을 때’ 라는 음식점 간판이 나올거예요. 거기서 그걸 끼고 다시 오른쪽으로 넓은 비포장도로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쭈욱 들어가세요.”

윤여사는 전화로 그렇게 쭈욱, 쭈욱, 하고 알려주었었다. 하림은 윤여사의 말을 기억하며 털털거리는 차를 몰고 쭈욱 들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과연 ‘돼지가 고추장에 빠졌을 때’ 라는 지극히 야만적인 이름의 음식점이 나타났다. 채식주의자인 윌 터틀은 ‘동물성 음식을 온전한 정신으로 바라보면 필연적으로 고통, 잔인함, 착취를 발견하게 된다. 육식동물인 인간은 자신의 잔인함과 야만성을 감추기 위해 그들이 먹는 동물성 음식에다, 해피 카우(Happy cow), 캘리포니아 치킨 (California chicken), 갓 밀크 (God milk)니 하며 온갖 아름다운 수식사를 다 갖다 붙인다.’ 고 했다. 하림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여기 있는 동안 ‘돼지가 고추장에 빠졌을 때’ 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지, 하고 혼자 생각했다.
비포장도로는 생각보다 넓고 평탄했다. 들판을 가로질러 곧게 뻗은 길이 족히 2킬로는 될 것 같았다. 길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은사시나무 가로수가 심겨져 있었다. 하림은 차창 문을 조금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차 안으로 가득 몰려 들어왔다. 뒷좌석에는 그가 얼마간 머물 동안 먹을 라면, 김치 등이 담긴 박스와 노트북, 그리고 옷가지가 든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읍에 나가면, 요즘 어디에나 그렇듯 대형 마트가 들어와 있으니 거기서 구입하면 될 거라고 윤여사가 친절하게 말해주었었다.

하림이 비포장도로의 삼분의 일 쯤 가고 있을 때, 저만큼 앞에서 혼자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길이 곧았기 때문에 아까부터 보긴 했지만 차가 가까이 갈수록 분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등에 약간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맨 사람은 멀리서 뒷모습만 보았을 땐 노인인 줄 알았는데, 차가 가까이 다가가자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돌아보는 모습이 스물이나 되었을까, 하는 젊은 여자애였다. 노랑물 들인 머리에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목엔 입까지 가린 머플러를 하고 있었다.

하림은 그녀 가까이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아가씨!”
하고 불렀다. 여자애가 뭔가, 하고 창문 쪽으로 허리를 굽히고 하림을 쳐다보았다.
“말 좀 물어봐요. 살구골로 가려면 여기루 쭈욱 가는 게 맞나요?”
그러자 여자애가 대답했다.
“살구골 어디예요?”
“그냥, 살구골 가면 되는데....”
“그럼 쭈욱 가세요.”
그리고나서 멈칫멈칫 생각하는 눈치더니,
“저두 그 쪽으로 가는데 태워주시면 안돼요?”
하고 당돌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림은 잠시 주저하다가 곧,
“그러세요.”
하고 대답하고는 옆 자리에 잔뜩 쌓여있던 책을 집어서 아무렇게나 뒤로 던져 치워주었다.
여자애는 먼저 등에 맨 가방을 벗어 의자에 놓은 다음, 엉덩이를 밀어 자리에 앉았다. 그녀와 함께 차가운 대기의 냄새가 따라 들어왔다. 의자에 앉은 여자애는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머플러를 풀었다. 얼핏 보니 왼뺨 귀 밑에 작은 나뭇잎처럼 생긴 푸른 점이 보였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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