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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비정규직 보호의 풍선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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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살아 움직인다. '정책'이 만들어져 시행되면 시장의 경제주체들은 '대책'을 꺼낸다. 정책이 효과를 거둘지 실패할지는 이 상호작용으로 판가름 난다. 다음 사례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비정규직 보호법이 2009년에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이영희 노동부장관과 한나라당은 "제도가 시행되면 6개월 사이에 100만명 이상이 해고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법률 개정을 시도했다. 기업에서 근무기간 2년을 앞둔 근로자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850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미래는 물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차단하고 양극화 해소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며 맞섰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의 비정규직 보호법은 예정대로 2009년 7월부터 적용됐다. 과연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졌을까? 노동부가 그해 7월 중순부터 4주 동안 사업체를 표본조사해 보니, 근무기간 2년 초과 기간제 근로자의 63%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와 여당의 우려가 기우였다고 판정하는 결과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100만 대량해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며 여당과 노동부에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추 의원은 "절반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면 잘된 법"이라며 "2009년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돌이켜 보면, 이른 결론이었다. 고용노동부가 2010년 4월~2011년 10월 조사한 결과 기간제법이 적용되는 근로자 121만1600명 중 10.5%인 12만6900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무기계약직 39만2400명, 32.4%를 더해도 전환된 비율은 42.9%에 그쳤다. 추 의원의 기준으로도 결코 잘된 법이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정책이 가격처럼 시장기구의 내부변수와 관련된 경우 시장은 그에 따라 의사결정을 조정한다. 위의 사례처럼 정책이 시장 내부변수가 아니라 행위를 규제하고자 할 때에는 경제주체는 다른 방안을 궁리하게 마련이다. 즉, 행위를 막거나 의무화하는 정책이 나오면 경제주체는 이를 회피하려고 한다. 또는 규제되지 않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도 하는데, 그 결과는 이른바 풍선효과로 나타난다.

기간제 근로자 보호가 의무로 되자 기업은 고용이 유연한 다른 형태에 눈길을 돌리게 됐다. 사내하도급이다. 사내하도급 고용은 법률로 규제되지 않는다. 사내하도급 고용은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증가했다. 더 앞서서는 1998년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돼 대다수 업종에서 파견 근로자를 쓰지 못하도록 제한한 이후 늘기 시작했다.

사내하도급 방식의 간접고용이 증가한 데에는 이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와 원청 근로자의 처우에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다.

한화그룹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신세계 이마트는 하도급 인력을 직접 채용하기로 했다. 상생 차원에서 갈채를 보낼 결정이지만, 이런 선택을 모든 기업에 강제할 수는 없다. 기업에 고용의 유연성을 택할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건이 되는 기업은 생산을 해외로 옮기고 해외 생산기지를 더 가동하는 '대책'을 가동하게 된다. 국내 일자리가 줄어든다. 우리나라보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많다. 해외에는 근로자 파견을 가로막는 나라가 드물다.

시장의 폐해를 보정하는 정부의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함으로써 불안정한 고용에 노출된 근로자를 보듬어 안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책 입안자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좋은 의도가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백우진 정치경제부장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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