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시절 한바탕 얼차려의 폭풍이 지나간 후 전우들과 한 모금씩 나눠 피우던 눈물 젖은 한 개비 담배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고단한 삶의 무게를 한 개비 담배 연기 속에 날려보내는 직장인이라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 지는 글입니다.
지난 2003년 4월 정부의 강력한 금연정책에 따라 금연시설이 8만여 곳에서 현재 33만 곳으로 대폭 확대되면서 흡연자들이 설자리는 무척 좁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PC방과 당구장, 그리고 일정 면적 이상의 음식점을 전체금연구역으로 지정해 담배를 못 피우게하는 '국민건강진흥법'이 지난해 12월부터 확대, 시행에 들어가면서 커피나 술 한잔 하면서 피우는 담배 한 개피의 여유는 이제 마음 속 앨범에 간직해야 할 추억의 한 조각이 됐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담뱃값을 현행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들고나왔기 때문입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지난 6일 담뱃값을 한 갑당 2000원 인상하는 내용의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흡연자들의 반발은 거셉니다. "부자 증세는 손도 못 대면서 서민 주머니만 턴다", "국민건강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세금을 더 걷기 위한 꼼수" 등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담뱃값 인상 추진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부족한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맞물리면서 논란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담뱃값은 지난 2005년 12월 500원이 오른 이후 지금까지 인상된 적이 없고 OECD 국가 중 가장 비싼 나라에 비해 6분의 1 수준입니다. 반면 2011년 한국의 성인 남성 흡연율은 47.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해 8조원에 이르는 돈이 담배연기로 사라지고, 성인 흡연률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물가때문에 더이상 줄일 허리띠 구멍조차 없는 서민들의 가슴이 담뱃재처럼 타들어 갔다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슬픈 일을 태우려 담배를 빠끔여 온 때문에 이젠 담배만 물면 슬픈 일이 날아와 반짝인다". 황순원의 시집 '골동품'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속이 타서 담배를 물고, 담배를 무니 속 타는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게 흡연자들의 현실입니다.
먹고살기가 좀 나아지면 굳이 담뱃값이 오르지 않아도 담배 끊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겠다는 새정부가 출범한 지가 언제인데 여전히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싸우느라 서민들의 고단한 삶에는 관심도 없는 정치권을 보면서 담배 한대 꺼내무는 일이 더 잦아진 요즘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김경훈 기자 sty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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