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부터 사흘간 골프를 치며 호남평야를 종단한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간혹 외신에서 골프를 치며 사막을 횡단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평야는 금시초문이다. 귀농인 김세영씨(40). 전북 정읍에 정착한 지는 3년째, 결혼과 동시에 귀농해 지금은 농사꾼으로 산다. 귀농 전에는 아시아경제 등에서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고향의 평야지대를 골프 치며 건넜다.
김씨는 벼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티 삼아 샷을 날렸다. 보리가 심어진 논에서는 작물 보호를 위해 휴대용 매트 위에 볼을 올린 후 샷을 이어갔다. 신발은 골프화 대신 장화를 신었다. 샷은 주로 5번, 7번, 9번 아이언을 이용했다.그나마 논바닥에 단단히 얼어 발이 빠지지는 않은게 다행, 한파에 중간중간 친구가 피워둔 모닥불을 수차례 몸을 녹이며 라운드를 펼쳐야 했다.
이번 라운드는 호남평야를 한 홀로 간주하고 군산에서 티샷을 날린 후 최종 목적지인 정읍에서 홀아웃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린은 집앞 논바닥에 농업용 보온덮개를 깐 뒤 중간쯤 구멍을 뚫어 만들었다. 깃대는 김씨 집 주변 대나무를 잘라 꽂았다. 본래 김씨는 현역기자 시절 여러 차례 싱글을 기록한 적 있다. 이번에 김씨가 정한 25km짜리 한 홀의 기준 타수는 178타. 하지만 사흘 동안 34개의 볼을 잃어 버렸다. 최종 스코어는 103오버파 281타. 첫날 바람이 심한데다 제법 자란 보리 싹에 볼이 잠기고, 어떤 곳에서는 논바닥에 박히는 바람에 로스트 볼이 많았던 탓이다.
김씨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날 날씨가 너무 추워 야영을 하지 못 했다. 대신 이튿날 밖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저녁을 먹으며 친구와 나눈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무모한 도전은 기꺼이 함께 준비하고, 동행해준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정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퍼팅을 마친 후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로 기나긴 라운드를 끝냈다. 두 사람은 내년에 함께 샷을 날릴 예정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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