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가 비리 의혹이 제기된 내정자의 '변호ㆍ방탄막' 역할을 하는 데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일단 지난 2010년 9월 신설된 인사청문회법 15조 2항 "국가기관은 공직후보자에게 인사청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부처들의 실제 행태는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15일 유진룡 내정자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해명에 나섰으며 같은 날 법무부는 황교안 장관 내정자의 종교편향 논란을 해명한 데 이어 16일 연말정산 부당 기본공제, 아들 불법 증여, 18일 위장전입의혹과 관련한 반박 자료를 연일 쏟아냈다.
최근 사퇴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의 경우 헌재가 각종 의혹에 육탄방어에 나섰다. 헌재는 지난 1월14일 이 내정자의 위장전입 및 저작권법 위반 의혹, 15일 삼성으로부터의 협찬, 16일 룸살롱 출입, 17일 자녀 재산 증식, 18일 조폭 석방 개입 의혹, 장남 군 휴가 및 건강보험 차녀 피부양자 등록 의혹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정부 부처들의 이 같은 행태는 인사청문회법 상의 규정에 어긋난 탈법ㆍ부당한 것이지만 정부 부처들은 별다른 문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분위기다. 한 정부 부처의 대변인실 관계자는 "장관 내정자가 요청하는데 거부하기가 어렵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헌법기관이나 정부기관들이 이처럼 내정자의 개인 비리에 대한 변호를 자임하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헌재의 경우 소장 내정자에 대한 무리한 변호에 나서는 바람에 국민들로부터 "사법의 최후 보루가 맞느냐"는 빈축을 샀다.
장관 내정 부처는 아니지만 최고의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8일 원장 출신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증여세 탈루 의혹을 해명하고 나서 객관적어야 할 연구기관으로서의 권위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는 지적을 샀다.
정부 부처 등 해당 공공기관의 둔감한 인식도 문제지만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호한 법적 규정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사청문회법 상 내정자에 대한 지원 범위 및 대상, 내용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태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연세대 교수)은 "정부부처가 갈수록 인사청문회 대상자의 해명 창구로 전락, 변호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다 의혹에 대한 증거 조사, 증언 등을 확보하지도 않은 채 후보자 의견을 일방적으로 내놓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조속히 법을 개정, 지원 내용, 범위를 정해 정책 검증 및 관련 사항 외에 국가기관이 동원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 전통이 깊은 미국의 경우 정부 부처가 인준 준비 시 정책 자료를 제공하고는 있으나 개인 비리 의혹을 해명하는 일은 없다. 우리나라도 이런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 국가 기관의 고위 공직 지명자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가 정책 검증 등의 업무에 한정, 지원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규성 기자 peac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